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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명예회장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창설된 1994년부터 1998년까지 연맹의 초대와 제2대 회장을 역임했다. 재임 중 K리그는 타이틀 스폰서 제도 도입해 전북 현대, 전남 드래곤즈, 수원 삼성, 대전시티즌(현 대전하나시티즌)의 창단으로 10개 구단 체제를 만들었다. 또 지역 연고제 정착 등 여러 발전을 이뤘다.
1993년부터 2009년까지는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재임하며 2002 국제축구연맹(FIFA) 한일 월드컵 유치와 성공적인 개최에 핵심 역할도 했다. 2002 한일 월드컵 열기는 K리그 흥행으로 이어졌고, 전국 10개 도시에 건설된 월드컵경기장들은 이후 K리그 구단의 홈구장으로 활용되는 등 인프라 발전과 인식 제고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 명예회장 FIFA 부회장 및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며 국제 축구계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
정 명예회장의 추천인으로 나선 김호곤 축구사랑나눔재단 이사장은 “항상 한국 축구가 국제 무대로 나아갈 길을 깊이 고민했고, 세계 기준에 다가가는 데 필요한 건 무엇이든 전폭적으로 지원했다”며 “축구 외교가 빛을 발한 2002 한일 월드컵은 한국 축구의 모든 걸 바꿔놨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정 명예회장은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이자 미래라고 말했다”며 “한국 축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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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 축구의 변곡점이 된 2002 한일 월드컵의 뒷이야기도 전했다. 정 명예 회장은 “축구협회 회장에 당선된 뒤 축구인들에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물었고, 바깥일을 해야 한다고 느꼈다”며 FIFA 부회장 선거에 나가게 된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대부분 잘 안될 거라 했지만 선거에서 11표를 얻으며 한 표 차이로 당선됐다”며 “우리 동네에서 표를 얻어야 하는데 일본, 북한, 중국이 안 찍어줄 거 같아서 다른 쪽에 부탁했다”고 떠올렸다.
정 명예 회장은 FIFA 내부 분위기는 당연히 일본의 월드컵 단독 개최였다며 “당시 국제 사회에서 경쟁력이나 경제력은 일본이 앞설지 몰라도 축구로는 한국이 월드컵 본선만 5차례 나갔고, 일본은 한 번도 출전하지 못했다”며 “학교에서 학생을 뽑는데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돈 많은 학생을 선발하면 되겠느냐 등의 소리를 해서 공동 개최를 했다”고 전했다.
정 명예 회장은 “내년에 북중미 월드컵이 있는데 축구협회와 연맹, 팬이 다 같이 힘을 모아서 대표팀에 큰 힘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지도자 부문 헌액자로는 김호 전 수원 삼성 감독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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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감독은 1995년 수원 삼성의 초대 사령탑으로 부임해 신생팀 수원 삼성을 리그 최강팀으로 만들었다. 1998년과 1999년 K리그 2연패를 달성했고, 2000~01시즌과 2001~02시즌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2연패를 이뤄냈다.
2002년에는 대한축구협회(FA)컵(현 코리아컵) 우승을 이끌며 국내를 넘어 아시아를 휩쓸었다. 김 전 감독은 뛰어난 전술과 폭넓은 축구 시야를 바탕으로 수원 삼성을 K리그 명문 구단으로 자리 잡게 했으며, 수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했다.
김 전 감독의 추천인으로 나선 리호승 한국여자축구연맹 전무이사는 “당시 구단 직원으로 가까이서 김 전 감독을 모실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며 “창단 초기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누구보다 담대했고 치밀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경기에 승리했을 땐 함께 했고, 패했을 땐 자기 책임으로 돌렸다”고 덧붙였다.
김 전 감독은 “이제 나이가 80세를 넘었다”며 “이런 시상식에 처음 와서 얼떨떨하지만,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는 “다들 건강하고 앞으로도 이런 날이 자주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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