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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감독은 촬영장에서 김정호의 호를 딴 ‘강산자’로 불렸다. 강우석 감독은 김정호의 행적을 좇으며 그가 된 것과 다름없었다.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지난해 8월 크랭크인 했다. 촬영을 시작하고 2개월 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강우석 감독은 많이 야위어있었다. 까맣게 탄 얼굴 때문인 듯도 했는데 몸무게도 7kg이나 빠졌었다. 강 감독은 “이런저런 평가를 떠나서 ‘고산자’를 차기작으로 선택한 건 정말 잘한 일 같다”고 마음에 들어했다.
강우석 감독이 김정호를 스크린에서 부활시키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더 이상 영화를 찍고 싶지 않을 때였다. 19번째 영화 ‘전설의 주먹’을 마치고 지칠 때로 지쳐버린 상태였다. 좀 쉬어야 겠다는 생각에 밴쿠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는데 기내에서 읽으라며 건네받은 책이 2009년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박범신 작가의 ‘고산자’였다. 책을 읽고나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잊히기는커녕 괴롭혔다. 이것도 인연이고, 운명이다 싶어 박범신 작가에게 연락했다.
“박범신 작가가 그러더군요. 다른 책은 내놓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영화로 만들자고 연락이 오는데 ‘고산자’는 단 한 번도 없었다고요. 제가 처음이었대요.”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몸 고생도 컸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특히나 컸던 작업이다. 김정호는 실존인물이지만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김정호가 차승원으로 기억될지 모를 일이었다. 30년 가까이 한국영화를 이끈 거장이지만 여유가 없었다. 첫 영화를 내놓는 것 같다고도 얘기했다.
“김정호 선생을 영화로 끄집어 냈을 때 사람들의 반응,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 그런 것들이 조심스러웠습니다. 자칫 훌륭한 인물을 영화를 잘못 찍어서 인물이 우습게 비치는 건 아닌지 두려웠죠.”
강 감독을 매너리즘에서 건져내준 만큼 ‘고산자, 대동여지도’는 특별히 애착이 큰 작품이다. 감독 인생을 되돌아보게 만들기도 했다.
“김정호 선생은 지도를 만들어서 실측해서 수정하고 다시 종이에 그려서 그것을 나무에 붙이고 깎아내서 그렇게 대동여지도가 탄생했어요. 대동여지도 목판본을 보면 정교함과 섬세함에 절로 숙연해집니다. 영화 스무 편 한 게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주변에다 ‘쉬고 싶다’는 이상한 소리를 했는데 더 치열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영화를 하면서 가장 큰 소득이 자기반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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