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 교수와 딥토크2]허정무 감독 실패의 경험 주목

김삼우 기자I 2007.12.21 14:36:17
▲ 이용수 교수



[이데일리 SPN 김삼우기자] 이용수 교수는 허정무 감독 체제에 애써 희망을 걸려고 했다. 무엇보다 그의 실패의 경험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으려고 했다. 허 감독은 1998년 처음 대표팀 사령탑을 맡아 그해 방콕 아시안게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아시안컵 등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중도사퇴했다. 그 이후 히딩크 감독을 시작으로 7년간 외국인 지도자가 국가대표 사령탑을 맡아왔다. 이 교수는 '실패의 경험'을 거듭 주목했다.

▲실패가 보약이 될 수 있다

“허정무 감독은 올림픽, 아시안컵에서 아픈 경험을 해 봤다.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서 0-3으로 대패하는 바람에 2승을 하고도 8강 진출이 좌절되는 아쉬움이 있었다. 시드니 올림픽만 해도 그가 감독으로서 처음 치러보는 세계 규모 대회였기 때문에 뜻하지 않은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K리그에서 다시 경험을 쌓았다. 앞으로는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있다. 실패를 많이 하면 할수록 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실패가 보약 노릇을 하기 때문이다.

팬들이 허 감독의 선임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2000년 실패에 대한 기억과 수비위주로 하다 역습을 노리는 전남의 전술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전남에서는 있는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히딩크가 계속 한국 감독을 맡았다면

이 교수는 허 감독이 이런 팬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는 일이 급선무라면서 국내 지도자이기에 갖고 있는 장점도 많다고 했다.

“불리한 여건에서 허정무호가 출범한다고 볼 수 있다. 팬들의 부정적인 시각을 빨리 바꿔야 할 것이다. 외국 감독이 계속 맡았을 때 문제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히딩크 감독이 2002년 월드컵이 끝난 뒤에도 계속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했을까. 대학 축구 등을 보러 다니면서 어린 중앙수비수를 발굴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대표팀을 전혀 모르고 온 코엘류 감독은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기가 힘들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을 잘 아는 핌 베어벡 코치가 보좌했기 때문에 상황은 달랐다. 그러나 대부분의 외국 지도자들은 한국 대표팀의 현안이나 현실을 모르고 온다는 문제가 있다.

반면 허 감독은 K리그에서 직접 경험하고 그동안의 대표팀을 지켜봤기 때문에 선수단을 어떻게 구성해나가고 어떤 선수를 새로 발굴해야 하는지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별도로 선수를 파악할 시간이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대표팀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다. 이점을 안고 출발하는 것이다. 더 준비를 잘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해하기 힘든 베어벡 중도 사퇴

이 교수는 한국 축구에 대한 파악이라는 면에서 핌 베어벡 감독의 중도퇴진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는 베어벡 감독의 경우 국가대표팀의 수장보다는 청소년 대표팀 사령탑으로 기용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베어벡 전 감독이 중도에 그만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축구에 대해 그렇게 많이 알고 있는 외국 지도자를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독일 월드컵 이후 자연스럽게 바통을 이어받아 여러 가지 정보도 갖고 있었다. 하나 하나 해결 나가기를 기대했다.

베어벡은 장점이 많은 지도자였다. 팀이나 선수에 대한 문제점을 찾아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트레이닝 방법을 밤새도록 연구해서 바꾸어 나가는 스타일이다. 단지 말로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계속 기술위원장을 했다면 19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사령탑을 맡겨 유소년까지 책임지도록 했을 것이다. 성인 대표팀 감독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경험을 쌓아 나가면 대표팀까지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의 단점을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지도자였다.“ 
 
▲허정무호, 코칭스태프 보강 바람직

이 교수는 허정무 감독이 스태프진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허정무 감독이 원하는 동계 합숙 훈련은 시기를 잘 선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 감독은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출발부터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허 감독이 스태프를 많이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 정해성 수석 코치, 김현태 GK 코치, 박태하 코치 등으로 코칭스태프를 구성했는데 숫자를 더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체력 담당 코치 등 좀 더 세분화된 스태프진을 구성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 허 감독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없다. 그의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는 스태프를 활용하는 것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지금보다 두명 정도 더 보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허 감독이 원하는 동계 훈련은 프로 구단의 협조가 있어야 하는데 시기를 잘 택해야 할 것이다. 규정대로 하면 허 감독도 힘들다. 가능성이 있는 새 얼굴을 발굴하거나 점검해 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 구단은 구단대로 동계 전훈을 통해 내년 시즌을 대비해야 한다. 특히 새로 지휘봉을 잡는 감독들이 많아 그들대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프로 구단의 훈련에 크게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대표팀 훈련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협의해야 할 것이다.“
▲ 이용수 교수

한국 축구, 월드컵 4강 기억에서 벗어나야

이 교수는 한국 축구가 월드컵 4강의 기억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월드컵 4강이 한국 축구에 약이 아닌 독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 선뜻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한번 나온 결과로 우리 축구가 그 정도 위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월드컵 4강이 약이 됐는지 독이 됐는지는 생각하기 나름이다. 그러나 월드컵 4강은 변함없이 축구를 사랑해 주시는 팬들에 대한 보답이자 선물이었다. 나도 축구가 좋아서 했고, 또 축구인으로 살고 있는데 우리 국민들에게 축구는 단순히 스포츠 가운데 하나가 아닌 또 다른 뭔가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월드컵, 올림픽 등 국제대회 본선에 출전했지만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월드컵에선 1승도 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팬들의 축구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다. 월드컵 4강은 이에 대한 정말 좋은 선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월드컵 4강에 올랐다고 우리 축구 문화나 저변, 행정 등도 세계 4강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마치 결과가 그렇다고 다른 모든 것도 세계 4위로 올라섰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이후 추락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다시 출발할 생각을 했어야 했다.”

▲기대를 낮추는 일부터 먼저 했을 것

이 교수는 그가 계속 기술위원장을 했었다면 2002년 12월부터는 우리의 시선을 낮추는 일부터 했을 것이라고 했다. 대한민국 축구의 목표는 여전히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것이다.

“가정이지만 기술위원장을 계속 맡았다면 우리의 목표를 낮추는 일부터 했을 것이다. 우리 목표는 월드컵 16강이다. 아시아 지역 예선을 거쳐 본선에서 16강에 항상 올라갈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게 목표일 것이다. 2002년에 비하면 목표점을 낮추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그렇다면 우선 할일은 세계 10위권 국가와 우리 경기력이 어디에서 차이가 나는지 찾는 것이다. 패스의 질, 볼 컨트롤 능력, 수비 커버플레이 능력 등 다각도로 접근해서 찾아나가고 부족한 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기술위가 할일이 이런 것이다.

1-1 돌파 능력이나 빨리 패스하고 움직이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왜 그런지 분석해야 하고, 초등학교때부터 기본적인 드리블 훈련이 등한시되는 탓에 대표 선수들의 드리블 능력도 떨어지는 것으로 파악된다면 유소년 축구부터 바꿔야 한다. 대표팀에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차이점을 찾아내고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이런 노력들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세계 10위권 국가와의 격차는 점점 좁혀나갈 수 있다.“

▲다시 협회에서 일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교수는 왜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기술위원장직에서 물러났을까. 그는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먼저 이야기했지만 당시 협회 내에서의 갈등도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축구 협회에서 다시 일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도 공개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 쉬고 싶었다. 대회를 마치고 병원에서 종합 건강 검진을 받았다. 1주일 후 면담을 하러가니 여의사가 검진 결과가 나온 차트하고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라. 주민등록번호까지 확인해가면서 내가 차트상의 인물인지 확인했다. 그때 의사 말로는 검사 결과가 내 얼굴하고 매치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랬다고 했다. 혈당만 정상일뿐 나머지 모든 수치는 정상 범위 안에 있는게 없다고 했다. 그만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조별 리그를 치르는 동안에는 매일 노트북을 열고 대국민 사과문을 가다듬곤 했다. 그때 포르투갈에 졌다면 히딩크 감독도 다음날 인천 공항으로 가 네덜란드로 떠났을 것이다. 누군가 국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했을 것이다. 경기 결과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협회를 나온 가장 큰 이유는 포상금 문제였다. 당시 내 생각은 균등지급이었다. 하지만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정몽준 회장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때 나는 ‘액수는 모르겠지만 회장님께서 지난 8~9년간 열정을 가지고 고생을 하셨는데 피날레를 장식하는 마당에 일괄적으로 똑같이 지급하는 게 맞다. 선수들과의 약속이기도 하다’고 말씀드렸다. 여기서 사달이 났다. 정 회장은 포상금 문제도 나와 이미 협의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대노했다. 중간에 보고가 잘못된 것이다. 이 일을 겪으면서 기술위원장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2003년 고 남광우 사무총장이 만나자는 연락을 했다. 다시 협회에서 일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이런 이런 조건이 있다. 계약서를 쓰고 하자’고 했다. 남 총장은 며칠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는데 쓰러졌다. 그때 남 총장과 이야기가 잘됐고 다시 협회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남 총장이 쓰러진 뒤 흐지부지됐다. 내가 나서서 다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2002년 4강 신화의 또 다른 숨은 주역이었던 남광우 총장은 2003년 4월 과로로 인한 심근 경색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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