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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POP콘]아들마저…'풍운아' 바비 브라운의 파란만장 가족史

김보영 기자I 2020.11.22 14:15:42

아내, 딸 이어 아들 바비브라운 주니어 사망
"사망 전 독감 증상…코로나19와는 관련 無"
외도, 폭력으로 물든 휘트니 휴스턴과의 결혼생활
R&B, 뉴잭스윙 전성기 이끌었으나 '풍운아' 전락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이데일리가 한 주 간 쏟아진 팝가수 및 빌보드 이슈들을 모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요약코너를 준비했습니다. 매 주말 핫한 주간 팝소식들을 선정해 소개합니다.

(왼쪽부터)바비 브라운과 그의 아들 바비 브라운 주니어. (사진=AP/뉴시스)
‘Run to you’, ‘I will always love you’ 등 명곡들을 남긴 팝의 여왕 휘트니 휴스턴. 그의 남편은 1980년대, 1990년대 R&B, 뉴잭스윙 장르를 이끈 세계적 가수 바비 브라운이었습니다. 팝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이 부부는 그들이 남긴 아름다운 명곡들과 달리 비극적인 일가의 죽음으로 세계를 비통에 잠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 가족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죠.

휘트니 휴스턴의 의붓아들이자 바비브라운의 친아들인 바비 브라운 주니어가 사망했습니다. 향년 28세.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 등 외신 보도들에 따르면 바비 브라운 주니어는 이 전날 로스앤젤레스(LA) 자택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숨진 상태였고, 경찰 당국은 “타살을 의심할 정황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날 미국의 연예 매체 TMZ는 “브라운의 가족은 그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으며 독감과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고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다만 그의 죽음이 코로나19와 관련은 없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바비 브라운은 이번 아들의 죽음에 대해 “이번에는 가족을 지켜달라. 지금 삶의 시점에 아들을 잃은 것은 우리 가족을 황폐화시켰다”며 “고통을 차마 설명할 수도 없다”고 입장을 밝히며 호소했습니다. 경찰은 바비 브라운 주니어의 구체적 사인을 규명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바비 브라운 주니어는 바비 브라운이 그의 첫 번째 부인 사이에서 얻은 첫 아들입니다. 휘트니 휴스턴은 바비 브라운의 두 번째 부인으로 1992년 결혼해 딸 바비 크리스티나 브라운을 낳았고 2007년 이혼했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치 못했습니다. 2007년 이혼 전까지 휘트니 휴스턴은 바비 브라운의 상습적인 외도와 가정 폭력에 시달려왔습니다. 얼굴에 멍이 든 모습이 종종 언론에 노출됐고 각종 태도 논란, 스캔들로 이미지가 급격히 추락했죠.

바비 브라운은 휘트니 휴스턴과의 이혼 과정에서 아내가 벌어둔 재산을 탐내는 듯한 발언들로 대중의 빈축을 샀습니다. 딸 크리스티나의 양육권을 둘러싸고 2년 간 진흙탕 법정 싸움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은 2007년 그와 이혼 후 심기일전해 준비한 6집 앨범 발매로 빌보드 차트 1위를 거머쥐며 재기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오랜 음주와 흡연, 마약으로 가창력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 후 2012년 2월 휴스턴은 베버리 힐즈의 힐튼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됩니다.

휘트니 휴스턴. (사진=AP/뉴시스)
당시 언론은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아닐지 추측했지만 부검 결과 코카인 등 마약을 복용한 뒤 욕조 안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익사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바비 브라운은 휘트니 휴스턴과의 불화와 방탕한 생활로 ‘팝 시장의 풍운아’로 불리며 각종 황색 언론에 등장해왔지만, 휘트니 휴스턴의 죽음을 누구보다 진심으로 슬퍼하고 애도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비 브라운은 휴스턴이 숨진 소식을 접한 뒤 자신이 몸담던 그룹 ‘뉴 에디션’과의 공연 투어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애도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년 후인 2015년, 바비 브라운은 딸 크리스티나 브라운을 떠나보내는 충격에 휩싸입니다. 더 비극적인 사실은 딸마저 자신의 어머니와 똑같이 마약 과다 복용으로 욕조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됐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원에 이송됐지만 뇌손상 판정을 받고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당시 나이 22세였죠.

바비 브라운은 딸이 숨지자 애도 성명을 통해 “크리스티나는 천사였고 지금도 천사”라며 “이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고 비통한 심정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올해 1월에는 휴스턴이 입양한 양아들이자 딸 크리스티나의 연인이었던 닉 고든도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바비 브라운은 세계로부터 ‘부인과 딸을 비극에 몰아넣은 악당(Villain)’이란 질타를 받아야 했습니다. 눈앞에서 가족을 세 번이나 잃은 비통한 남편, 아비의 심정 대신 불화로 물든 결혼 생활과 폭력, 외도가 부각돼 가수로서의 재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한편 바비 브라운은 1980년대와 90년대 소울풍 가사와 파워댄스로 R&B 시장에 등장해 뉴잭스윙이란 장르를 개척한 선구자였습니다. 그가 1983년 학교 친구들인 마이클 비빈스, 리키 벨과 의기투합해 결성한 그룹 ‘뉴 에디션’은 R&B 열풍을 이끈 주역이었죠.

그러다 바비 브라운은 그룹을 탈퇴한 뒤 솔로로 전향, 1988년 ‘Don’t Be Cruel’을 발표하며 뉴잭스윙이란 새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Something in Common’, ‘Every Little Step’ 등 명곡들은 그의 지난 과오들과는 별개로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명곡입니다. 퇴색한 가창력과 추락한 이미지로 왕년의 명성을 되찾기 어려워졌지만, 그가 상실의 아픔을 딛고 재기에 성공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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