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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대표팀의 또 다른 힘 '세대 통합'

정철우 기자I 2013.02.27 10:39:15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 금의환향하는 정대현(왼쪽 위)과 이승엽(왼쪽 아래). 사진=이데일리 DB
처음 대표팀에 합류 한 차우찬(오른쪽 위)과 김상수(오른쪽 아래).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지난해 12월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 한가지를 던져줬다. 지역과 소득 수준으로만 갈라져 있는 줄 알았던 한국 사회는 세대별로도 크게 생각을 달리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2,30대의 생각과 50대 이후의 마음이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건 잠재적으로 우리 사회의 역량을 떨어트릴 위험요소가 될 수 있음을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문제의식은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뾰족한 해법은 찾지 못하고 있다.

제 3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최고참 진갑용(74년생) 부터 막내 김상수(90년생)까지 다양한 연령이 포진해 있다. 둘의 나이 차이는 무려 16년이나 난다. 운동 선수의 활동 연령을 감안하면 김상수는 20대, 진갑용은 50대에 막 접어든 세대라 할 수 있다.

세대통합? WBC 대표팀에선 조금도 걱정할 필요 없는 문제다.

투수 차우찬은 얼마 전 투수 고참 중 한명인 정대현에게 고백을 한가지 했다. 자신이 야구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정대현이었다는 걸 처음 털어놓았다.

정대현은 지난 1996년 군산상고를 봉황기 우승으로 이끈 주축 투수였다. 대회가 끝난 뒤 군산 시내에선 카 퍼레이드가 벌어졌고 가장 앞선 곳에 정대현이 서 있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던 차우찬은 그런 정대현의 모습을 보며 투수로서 꿈을 키웠고, 결국 WBC라는 큰 무대에서 대표팀으로 한 팀에 속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차우찬은 그때 군산상고의 모든 경기를 TV로 지켜봤다고 한다. 때문에 정대현을 ‘투수였지만 방망이 솜씨도 좋았던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정대현이 안타를 제대로 친 전국 대회는 그 대회가 유일했다고 한다. 차우찬의 눈에 정대현이 얼마나 크게 비춰졌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한편 당시 대회엔 1학년으로서 좋은 활약을 펼친 이진영도 있었다. 아마도 이진영이 더 인상에 깊었다면 한국 야구는 또 한명의 강견 외야수를 보유할 수 있게 됐었을 수도 있다.)

차우찬과 정대현 뿐 아니다. ‘국민 타자’ 이승엽을 동경했던 소년 김상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 선수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그는 “우상과 함께 삼성에서 뛴다는 것도 설레였는데 대표팀까지 같이 하게 됐다는게 아직도 잘 실감이 안난다”고 말했다.

또한 1회 대회에선 박찬호와 배영수의 관계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할머니 손에서 컸던 배영수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교 시절엔 야구를 그만둘 위기도 여려차례 있었다. 그 때 큰 도움이 됐던 것이 바로 한국인 첫 메이저리거 박찬호의 장학금이었다. 배영수는 이례적으로 박찬호 재단의 장학금을 2년 연속 받으며 고교를 마칠 수 있었다.

한 고참 선수는 “어릴 때 대표팀에 처음 왔을 때 정말 많은 걸 배웠다. 나름 어린 나이에 ‘내가 최고’라는 생각에 우쭐 하기도 했는데 워낙 대단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선배들이 괜히 야구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대현과 이승엽은 대표팀에 합류하며 약속이라도 한 듯 “이번 대회에선 나 보다 후배들이 더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자신의 자리를 ‘대타’라고 미리 확정 짓기도 했다. 김태균 이대호 등과 1루수로 포지션이 겹치지만 자신의 명예를 앞세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경쟁하지만 자신의 욕심을 앞세우지 않는 고참. 선배들이 이뤄놓은 것 들을 먼저 인정하고, 배워서 더 멀리 도약하겠다는 꿈을 꾸는 후배. 이렇게 하나 된 선수들이 있었기에 그동한 한국 야구는 가진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하며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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