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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원이 ‘밀정’에서 맡은 배역은 엄태구가 연기한 하시모토의 수하 우마에 역. 김지운 감독은 그에게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다”면서 “무섭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엄태구의 따귀신은 검색어에 올라 있을 만큼 ‘밀정’의 인상적인 장면이다. 하시모토가 따귀를 쉴 새 없이 때리는데 우마에는 눈도 깜빡 하지 않는다. 이 장면은 네 테이크에 걸쳐 촬영이 이뤄졌다.
“첫 테이크를 찍을 때 살짝 움직였는데 밋밋해 보였어요. 감독님이 ‘너도 괴물이다. 괴물이기 때문에 하시모토 밑에서 일을 하는 거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다음부터 맞으면서 꿈쩍도 안 했어요. 어금니를 꽉 물었죠. 어느 순간 우마에에 몰입돼서 속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는데 말로는 표현할 수 없지만 그 순간의 얼굴이 필름에 담겼어요.”
정도원은 나이 서른에 데뷔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일을 시작한 셈이다. 포항 출신으로 중학교 시절에는 전교 1·2등을 하며 공부도 잘했다. 부모는 조부의 뒤를 이어 한의사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공부에 뜻이 없었다. 그런 그를 연기의 길로 인도한 건 재수 시절 노량진 길가 벽에 붙어 있던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JSA’ 포스터를 본 것이 계기였다.
“포항에서 나고 자라서 연기, 배우는 저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인 줄 알었어요. 그랬는데 그 포스터를 본 순간 그냥 눈물이 났어요. 처음에는 재수가 너무 힘들었나 싶었는데 대학에 가서도 그 기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어요. 수업은 관심도 없었고 연극 동아리에 빠져 살았어요.”
재수로 경희대 공대에 입학한 정도원은 전역 후에 한양대 연영과로 편입했다. 졸업 후에 연극을 하면서 기회를 기다렸다. 데뷔작에서 단역으로 얼굴을 비쳤는데 이듬해 운 좋게도 ‘체포왕’(2011)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꿰차며 순탄한 길을 걷는 듯했다. 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5년간은 단역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 기간 낮에는 연극을 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버텼다. 그 무렵의 자신을 에너지가 방전된 배터리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에게 ‘밀정’이 더없이 소중한 이유다. ‘밀정’ 후에는 지금의 기획사를 만나 안정된 둥지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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