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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수가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는 다른 때와 달랐다. ‘국가부도의 날’이 현재에서 머지않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한 영화여서다. 김혜수는 최근 이데일리와 만남에서 “마음이 동해서 선택을 했지만 함부로 선택할 수 없는 작품이었다”며 “부족한 연기가 부실한 준비로 드러나지 않았으면 해서 준비에 신경을 썼다”며 겸손하게 얘기했다.
‘국가부도의 날’은 국가부도까지 1주일이라는 시간을 남겨놓고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그리고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까지, 1997년 IMF 위기 속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김혜수는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이란 인물로 출연해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분투한다. 경제 전문가 역할이어서 전문 용어는 물론이고 IMF 협사에 필요한 영어 대사까지 철저하게 준비해야 했다. 작품을 결정하고 2주 뒤부터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약 5개월 간 경제 강의 및 영어 수업을 받으며 한시현을 체화했다.
“제작팀에서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서포트해준 덕분이죠. 지금까지 전문직 역할을 많이 했지만 한시현은 직업이 캐릭터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한시현이 사용하는 단어나 말이 입에 붙지 않으면 안됐기에 경제 강의며 영어며 이번처럼 스케줄을 짜서 준비했어요. 이렇게 한 건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김혜수는 이 영화를 하면서 IMF 외환 위기를 제대로 들여볼 수 있었다. 그 당시 20대 중후반 나이로 한창 연기를 하고 있었던 터라 IMF 외환위기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사실에 머쓱해하기도 했다.
“뉴스에선 매일같이 부도 얘기가 나오고, 주변에서도 갑자기 이민 가거나 이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좋은 처지로 이민 간 게 아니었죠. 제 친인척 중에도 그런 고충이 있었어요. 제 초등학교 친구는 어제(19일)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엄청 울었대요. 애사심이 컸던 친구인데 초년생 시절에 IMF를 겪으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영화에서 한시현이 IMF 총재를 상대로 분투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갑옷만 걸치지 않았을 뿐 투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통상 상업영화에서 한시현의 캐릭터는 남자 배우가 주로 맡았던 배역인데, 여자 배우가 맡아서도 흡입력과 존재감이 달리지 않는 건 전적으로 김혜수의 공이다. 그렇지만 여성 주연이라고 특별하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게 김혜수의 마음이다.
“한시현이 여성이어서 특별함을 가지려고 하지는 않았어요. 투사나 전사처럼 보여지기 보다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보여지길 바랐습니다.”
이 영화의 많은 볼거리 중 하나는 김혜수와 할리우드 배우 뱅상 카셀의 대립이다. 두 사람은 IMF 협상을 놓고 한국 측 대표단과 IMF 총재로서 호흡을 맞췄다.
“뱅상 카셀의 팬이었어요. 출연이 결정됐다는 얘기를 듣고 보지 못한 최근 작품도 다 찾아본 걸요. 그런 해외 배우들과 연기가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촬영 전에는 궁금증, 기대감 같은 게 컸던 것 같아요. 촬영 분위기가 엄중하다 보니 막상 연기를 하면서 감상을 느낄 여유가 없었지만 한국영화는 처음이고 틀도 다르고 정서도 다른데 제 몫을 해내는 것을 보고 역시 멋었다고 생각했어요.”
‘국가부도의 날’은 시사회 후 언론과 평단의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김혜수도 영화를 먼저 본 지인들로부터 감상평을 많이 듣는다. “초등학교 시절에 IMF 외환 위기를 겪었는데 몰랐던 사실이 많았다”는 후배가 남긴 음성 메시지를 직접 들려주며 고무된 반응을 보였다.
“사람마다 경험치도 다르고 그에 따른 생각은 다 다르잖아요. 누군가는 IMF를 구제금융으로 이해했을 수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어떤 영화를 보고 ‘주인공 멋있었지’, ‘옷이 어땠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저마다 경험, 생각, 의견들을 얘기하는 영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국가부도의 날’은 그런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영화고 그래서 관객들의 반응이 더 궁금해지는 영화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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