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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4월 25일자 36면에 게재됐습니다. |
최근 가수들이 지상파 3사 미니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연이어 나서고 있다. 최근 K팝 열풍에 힘입은 가수들이 드라마의 주요 캐스팅 대상으로 떠오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 때문에 배우들이 자신들의 고유 분야인 연기에서조차 K팝 그룹 출신 가수들에게 뒤처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현재 지상파 3사에서 방송 중인 미니시리즈의 주인공 중 가수 출신 배우들이 적어도 한 명씩 포진해 있다. KBS2 `사랑비`의 윤아, MBC `빛과 그림자`의 손담비, SBS `패션왕`의 유리 등 월화 미니시리즈의 주인공과 MBC `더 킹 투하츠`의 이승기, SBS `옥탑방 왕세자`의 박유천 등 수목 미니시리즈의 주인공들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 윤아와 유리, 박유천 등은 각각 K팝 그룹으로 꼽히는 소녀시대와 JYJ의 멤버들이다. 후속으로 준비되는 미니시리즈에도 미쓰에이의 수지(KBS2 `빅`) 등 K팝 출신 그룹이 등장하고 있어 이 같은 분위기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가수 출신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요즘 국내 대중문화의 지형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 2004년 드라마 `겨울연가`의 흥행 이후 한류 열풍이 일어난 데 이어 2009년 이후 K팝 열풍이 그 뒤를 이었다. K팝 열풍으로 몇몇 그룹들이 인기의 정점에 오르면서 자연스럽게 배우들의 영역에 들어섰다. 가수들은 2010년 들어 배우들의 영역이었던 드라마, 뮤지컬, CF 등을 점령하고 있다.
K팝 그룹 출신 배우가 캐스팅되면 일본 등에서 투자가 들어오는 등 달라진 환경도 가수들의 드라마 진출을 가속화했다. `사랑비`의 윤석호 PD는 “장근석을 먼저 캐스팅한 후 소녀시대의 멤버 윤아가 낙점되자 일본 측의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면서 “`겨울연가`를 만들 때와 또 다른 한류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가수의 득세는 배우의 위세를 꺾기게 했다. 배우 전문 기획사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몇몇 배우 전문 기획사들이 지난 2005년부터 불어닥친 코스닥 상장 `붐`이 일어날 당시 신인 발굴을 게을리하고 `머니게임`에 몰두한 것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당시 국내 최대 기획사였던 싸이더스에 이어 내로라하는 배우 전문 기획사들이 속속 코스닥에 이름을 올렸고, 배우 이영애의 이름만으로 급등하던 주식이 나왔던 때였다. 배우 전문 기획사들이 모인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는 최근 협회 차원에서 신인 배우를 발굴하는 오디션을 기획하는 등 활로를 찾고 있다. 김길호 한국연예매니지먼트 사무국장은 “신인을 발굴해 소속 기획사에서 관리하는 시스템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수, 특히 K팝 출신 가수들이 드라마에서 활약하자 드라마 업계에도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일본 등에서 인기 있는 JYJ의 멤버 박유천 등이 캐스팅된 드라마는 투자가 몰려들고 높은 가격에 외국 판매되는 등 드라마의 가치를 높이게 된다. 최근 들어 배우 못지않은 연기력을 가진 가수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반면 드라마 제작사가 손쉽게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K팝 가수에 집중하면서 신인 배우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됐다. 그 때문에 연예계 진출을 꿈꾸는 쓸만한 예비 스타들도 배우가 아닌 K팝 그룹 등 가수 분야에 눈을 돌리고 있다. 배우 전문 기획사로서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셈. 한 기획사의 관계자는 “드라마 제작진이 20대 초반의 캐릭터를 배우 기획사보다 음악 기획사에서 찾는 게 더 쉬운 때가 됐다”면서 “배우 기획사가 앞으로 환골탈태의 변신을 보이지 않으면 당분간 배우 굴욕 시대가 이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