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포스트’는 국방 전문가 댄 엘즈버그가 베트남 전쟁을 참관하고 전쟁의 충격적인 실상을 목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댄 엘즈버그는 실제 전장과 다른 내용을 전하는 정치인의 말과 행동에 남모를 결심을 한다. 트루먼·아이젠하워·케네디·존슨 등 4명의 전임 대통령과 당시 대통령 닉슨이 30년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자행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펜타곤 페이퍼’의 복사본을 몰래 만들어 놓는다. 1971년 뉴욕타임즈는 닐 시언 기자는 ‘펜타곤 페이퍼’를 토대로 미국 정부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거짓을 처음 공개한다.
영화는 당시 과정에서 미국 위싱턴에서 발행되는 워싱턴 포스트가 언론의 책무와 미국 여성 첫 발행인의 용기를 다룬다. 워싱턴 포스트 편집장 벤 브래들리(톰 행크스)는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벤은 지역지에 머물고 있는 워싱턴 포스트가 닉슨 대통령의 차녀 결혼식 사진을 얻는 데 공을 들이기보다 진실을 알리는 언론의 책무에 충실해 전국지의 명성을 얻고자 한다. 마침내 기밀 문서를 전체를 손에 쥔 벤은 세상에 공개하기로 마음먹는다.
닉슨 정부는 증권거래소 상장을 앞둔 워싱턴 포스트를 상대로 온갖 방해 공작을 펼친다. 결국 워싱턴 포스트의 첫 여성 발행인이자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메릴 스트립)의 결정이 남겨진다. 법률 고문팀은 대법원 판결까지 보도 유보를 권하고, 기자들은 당장 보도하지 않으면 사퇴하라고 반박한다. 법원이 닉슨 정부의 편을 들면 꼼짝없이 국가 기밀을 누설한 간첩죄도 뒤집어쓴다. 캐서린은 아버지와 남편, 그리고 자신까지 이어진 언론 기업에 대한 책무를 받들기로 한다. 자신의 판단 하나만 기다린 기자들의 편이 돼 발행을 감행한다. 이후 모든 언론이 펜타곤 페이퍼의 문제를 지적하고, 마침내 대법원은 워싱턴 포스트의 손을 들어준다.
◇ 진실을 찾는 언론의 책무는 진행형
‘더 포스트’는 우편물을 뜻하는 ‘post’라는 대명사를 고유명사로 써 워싱턴 포스트, 나아가 저널리즘에 대한 헌사를 보냈다. “뉴스는 역사의 초고다(The news is the first rough draft of history)” “언론은 통치자가 아니라 국민을 섬겨야 한다(The press was to serve the governed, not the governers)” 등 명대사는 저널리즘의 영원한 명제를 드러낸다. 기밀문서 중 일부를 얻고 비서에게 “난 이 일이 너무 좋아”라고 어린아이처럼 말하는 편집장 벤과 떠들썩한 주식상장 자축연을 뒤로 동전을 한 손에 가득 쥔 채 공중전화를 찾아 펜타곤 페이퍼 제보자에게 접촉하는 기자를 묘사하는 장면에선 스필버그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기사의 질과 수익은 함께한다(equality and profitability go hand in hand)”는 경영책임자 캐서린과 “논조는 내가 결정한다”는 편집책임자 벤이 위싱턴 포스트를 바라보는 지점은 다르지만 성장은 ‘언론출판의 자유’에서 출발한다는 데는 뜻을 같이한다.
영화의 메시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좀더 명확해진다. ‘워터 게이트 사건’을 다룬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은 닉슨 대통령의 재임 소식을 전하는 TV 뉴스와 함께 마치 총소리를 연상케 하듯 타자를 두드리는 두 기자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담아내며 마무리된다. 이 장면은 ‘더 포스트’에서 궤를 같이 해 등장한다. ‘워터 게이트 사건’의 단초가 된 1972년 미국 민주당 당사 침입 사건으로 끝을 맺는다. ‘워터 게이트 사건’은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집요한 추적 끝에 닉슨 대통령이 도청을 지시했다는 사실을 특종 보도하고, 그 결과 닉슨 대통령은 사임한다. 언론의 책무는 단지 한 차례의 보도로 끝나지 않고 여전히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이다. “언론은 늘 옳거나 완벽하지도 않지만, 계속 써나가는 게 의무”라는 영화 속 대사도 이를 방증한다.
◇ 열정 가득한 첫 여성발행인의 승리
1871년에 창간된 워싱턴포스트는 금융 거물 유진 메이어가 1933년 인수한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1917년 연방준비제도 의장이자 훗날 세계은행 총재가 되는 유진 메이어의 4번째 아이로 태어났다. 유진 메이어의 뒤를 이어 1946년 딸이 아니라 사위인 필립 그레이엄이 사주가 된다. 남편 필립은 몇몇 능력 있는 편집장을 영입해 사세를 확장했다. 하지만 캐서린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남편은 바람을 피웠고 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다. 필립이 죽은 뒤 ‘미망인’ 캐서린 그레이엄이 전면에 나서 미국 최초의 여성 발행인으로 된다.
‘더 포스트’는 영화의 중반부터 편집장 벤보다 발행인 캐서린에 무게 중심을 놓는다. 캐서린 그레이엄(1917~2001)은 ‘정론 언론의 길을 터준 신문 발행인’(‘인물세계사’ 김정미 역사저술가 글 참조)으로 남아 있다. 영화 속 캐서린은 침대 위에서 온갖 서류를 살피다 잠들고, 자신의 집에서 라운드테이블이라는 이름의 파티를 열어 사교를 이어간다. 온실 속 화초가 아닌 단단한 여성의 삶을 살았던 캐서린의 모습을 부각한 연출이다. 독립적인 삶을 좇아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하층민의 삶을 접했고 사회 부조리에 대해 고민했던 캐서린의 젊은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통해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이전의 사회를 다뤄보고 싶다고 말했다. 캐서린은 여성의 정치·사회·경제적 활동이 제한적이던 당시 미국 사회에서 ‘최초’라는 수식어와 함께 미국 여성의 롤 모델이었다. 영화는 선망의 눈빛으로 늘어선 여성들을 가로질러 닫힌 문을 열고 남성 투자자들을 당당히 만나거나, 대법원 계단을 내려가다 수십 명의 여성의 응원을 받는 캐서린의 모습을 대비적으로 등장시켜 이를 묘사한다. 스필버그는 캐서린 그레이엄을 통해 저널리즘이 여전히 나아갈 지향점과 결단, 용기 등 최근 미투 운동으로 주목받은 페미니즘의 현주소를 한 편의 영화에 온전히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