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14좌를 모두 등정한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을 12일 여의도에서 만났다. 전날 귀국한 오 대장은 "어젠 목욕탕에서 묵은 때를 벗겼다. (얼굴에) 팩도 했다"며 약간 들뜬 모습이었다.
―한동안 쉬고 싶다고 했는데.
"안나푸르나에서 내려오고 나서 여독을 풀 시간도 없었고 혼란도 있었다. 정말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8000m 등반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고소(高所) 적응에 걸리는 시간보다 하산해서 평지에 적응하는 시간이 더 길다. 어제 점심, 저녁, 오늘 아침까지 엄마가 해주신 된장찌개만 먹었다."
―8000m 산에 도전할 때 도대체 어떤 각오로 나서나.
"못 돌아올 수도 있다…. 못 돌아올 수도 있는데,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할까.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안 한다. 부모님께 '잘 다녀올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하고 떠난다. 부모님은 '욕심내지 마라'고 하신다."
―그동안 등반하느라 돈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돈 얘기하면 눈물 난다. 산이 좋아서 직장도 그만뒀다. 7대륙 최고봉 도전 초반까지는 내가 모았던 돈을 썼고, 그 이후엔 후원을 받았다. 지금 회사(블랙야크)와는 2008년부터 계약했다. 회사는 8000m 봉우리 하나당 2500만원을 주고, 장비와 의류를 지원한다. 회사에서 받는 연봉(이사 직급)은 따로 있다.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제가 받는 게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른다."
―대기업 부장급 연봉이 7000만~8000만원이다.
"그럼 비슷한 거 같다."
―2007년까지는 5개 봉만 올랐는데, 2008년과 2009년에 4개 봉씩 등정을 한 데 대해 '물량주의'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여성 등반가인) 에두르네 파사반(스페인)과 겔린데 칼텐부르너(오스트리아)가 나보다 한참 앞서 가고 있었다. 그땐 내가 최초(14좌 완등)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다. '지금 3등인데, 분발하면 2위쯤은 되겠다'는 마음이었다."
―얼마 전 이탈리아의 유명 산악인 한스 카머란더가 독일 슈피겔지에 오 대장이 등반 때 산소를 사용했다고 비판했는데.
"에베레스트(해발 8848m·2004년 5월 20일), K2(해발 8611m·2007년 7월 20일) 때만 산소를 마시면서 올라갔다. 나머지는 무산소 등정이었다. 캠프의 텐트에서 잠을 잘 때도 산소를 안 썼다. 서양 등반가들 중에는 잠잘 때 산소를 마시고 등정 때만 무산소로 하는 경우도 많다."
―헬기를 사용한 적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헬기로 베이스캠프에 들어간 건 다울라기리(2009년 5월 21일 등정) 한 번뿐이다. 그땐 시간이 없었다. 칸첸중가(2009년 5월 6일 등정)에 올라갔다 내려와 며칠 만에 바로 이동해야 했다. 몬순(장마)이 시작되는 6월 전에 등반을 마쳐야 했다."
―베이스캠프에서 다른 베이스캠프로 옮길 때도 헬기를 썼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건 한국의 다른 팀이다. 카머란더가 다른 한국 등반가를 나로 착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실을) 얘기하면 고자질하는 게 된다."
―셰르파의 도움에 많이 의지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셰르파의 도움을 안 받는 산악인은 없다. 그걸 꼬집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도 에베레스트, 초오유, 로체, 브로드피크는 혼자 올라갔다."
―14좌 완등 직전에 좋은 꿈을 꿨다는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기 바로 전날 박지성 선수가 분홍색 티를 입고 열심히 뛰는 생생한 꿈을 꿨다. 박지성 선수 덕에 등반에 성공한 것 같아 고마운 생각이다."
―14좌가 아니라 더 많은 18좌쯤이 있었다면 어떻게 도전했을까.
"실제가 아닌 걸 (가정해서) 대답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 한계나 내 나이로 봤을 때 앞으로 8000m에 몇 번이나 도전하겠나. 한두 번? 없을 수도 있고…. 앞으로는 살고 죽는 절박감이나 비장함 없이 자연을 즐기고 싶다. 자연의 혜택을 많이 받았으니까 어떻게 보전할지도 생각해보고. 낮은 산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과 트레킹도 하고, 행복한 일만 생각하고 싶다."
'최근 인터넷에 오 대장에 대한 악성 댓글도 꽤 있더라'고 하자, 오 대장은 "그걸로 스트레스 푸는 사람들이 있는가 보죠? 인터넷은 잘 안 봐요"라고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하지만 엄마가 해주는 밥상 얘기가 나오자 오 대장의 얼굴은 다시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