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의 돌직구…"나는 반골이다"(인터뷰)

최은영 기자I 2012.11.09 09:19:57
영화 ‘남영동1985’ 정지영 감독이 이데일리 스타in과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김정욱 기자)
[이데일리 스타in 최은영 기자] ‘남영동1985’는 7자로 설명할 수 있다. ‘정지영 감독 작품’. 배경은 1985년. 군부독재 시절, 끔찍한 고문이 자행됐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무대다. 감독은 영화 상영 내내 관객을 인간 살육장 같은 고문실에 몰아넣고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사지를 꽁꽁 묶어둔다.

오는 22일 영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정지영(66) 감독은 “이렇게 힘든 영화를 들고 나와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관객도 함께 갇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양해를 구했다. 누구보다 먼저 극한의 고통을 체험한 사람은 감독 그 자신이었다.

“내가 바로 고문 가해자였어요. 고문하라고 시켰고, 그걸 또 지켜보고 있었으니. 그건 반대로 고문을 당한 것이나 진배없었죠. 촬영장에서 전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였습니다.”

◇ 야만의 시대·부당한 권력에 영화로 맞서다

‘남영동1985’는 고(故) 김근태 의원의 자전적 수기를 바탕으로 시대의 아픔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이름은 김종태(박원상 분)로,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이두한(이경영 분)으로 바뀌었다. 감독은 그 이유로 “고문 피해에 관한 이야기가 김근태 의원 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아픈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억울한 피해를 봐야만 했던 사람들을 김종태로, 야만의 시대가 낳은 괴물 같은 사람들을 모두 이두한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주연배우가 실존인물을 반드시 닮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영화 마지막에 유인태, 이재오 등 재야 민주화 운동 출신의 전·현직 정치인을 비롯해 실제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 영상을 넣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영화는 고인의 인생이 아닌, 고문 그 자체에 집중한다. 상영시간 대부분을 고문 묘사에 할애했다. ‘장의사’로 불리는 고문기술자 이두한의 악랄함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고춧가루 탄 물을 코와 입에 들이붓는가 하면, 회음부가 터지기 직전까지 전기 고문을 가한다.

실재와 허구의 경계에 대해 묻자 정 감독은 “과장은 없었다”고 했다. “바늘로 손톱 밑을 반복적으로 찌른다든가, 볼펜 심을 성기 한가운데로 밀어 넣는 고문 행위 등은 차마 잔인해 영화에 넣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영화 ‘남영동1985’의 장면들. ‘부러진 화살’에 출연했던 박원상을 비롯해 이경영, 문성근, 명계남, 김의성, 이천희 등이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 정치선동영화? ‘남영동..’은 인권영화

정 감독의 시계를 1980년대로 돌려놓은 건 지난해 말 김근태 의원의 죽음이었다. 여기에 올 초 ‘부러진 화살’의 흥행은 영화 제작에 속도를 내게 했다.

“영화 개봉 시기가 왜 하필 대선을 앞둔 지금이냐 묻는 분들이 많아요. 우연이었죠. 오래전부터 고문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김근태 의원 돌아가시고 우연히 그분의 수기를 읽게 된 거예요. 다행히 ‘부러진 화살’이 흥행하고 있을 때라 돈을 빌리기도 쉬웠죠. 모든 게 잘 맞아떨어졌어요.”

정 감독은 “‘남영동1985’는 정치적인 영화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인권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그럼에도, 일부에선 ‘정치선동영화’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와 관련 정 감독은 “엄격히 말해 모든 작품은 정치적”이라며 “상업적인 오락 영화에도 감독의 정치성은 스며들게 마련이다. 그것이 보수든, 진보든, 무관심이든. 정치를 소재로 한 모든 영화는 나쁘다? 그런 우매한 말이 어디 있는가. 무엇보다 정치는 왜 다루면 안 되는 것인가. 사랑, 우정도 무수히 다뤄지는데. ‘영화가 그렇게 정치적이어도 됩니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고 항변했다.

◇ 30년 반골 인생··· 절대 가치는 ‘평화’

정 감독은 타협을 모른다. 세상을 향한 칼날의 날카로움도 여전하다. ‘남부군’(1990), ‘하얀 전쟁’(1992),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로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 경제사, 문화사를 아울렀던 그는 13년 만에 돌아와 사법부(‘부러진 화살’), 행정부(‘남영동1985’) 등 국가 권력의 부조리를 차례로 고발하고 있다.

정 감독은 최근 자신의 행보를 “부당한 권력이 자신들에게 도전하는 한 개인을 말살시키려는데 대한 몸부림”이라고 정의했다. 타협하지 않는 주관, 반골(叛骨) 기질이 보인다는 말에도 호탕하게 웃으며 “아, 나는 반골이다” 시원하게 인정했다.

“아웃사이더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싶어요. 물론 나도 어떻게 보면 유명 감독으로 기득권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에 대한 비판을 멈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건 그냥 나의 취향이자 선택의 문제라고 해두죠. 스스로 외부자이길 택했으니 그로 인한 손해와 불편함은 감내해야죠.”

그가 추구하는 절대 가치는 ‘평화’다. 사람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꾼다. 정 감독은 “그런 세상이 오면 나 같은 사람은 더는 만들 영화가 없겠지만 그래도”라며 웃었다.

(사진=김정욱 기자)

정지영 감독은 오는 12월6일 또 한 편의 문제작을 내놓는다. 다큐멘터리 ‘영화판’이 그것이다. 국내 영화 제작자와 감독, 배우 등 영화인을 인터뷰해 영화계의 뒷이야기를 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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