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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꽃제비(북한에서 거주지가 없는 아이) 영상을 봤어요. 먹을거리가 없어서 산에서 풀을 뜯는 모습이었죠. 제 아이처럼 느껴졌어요. 그 시기에 폴란드로 간 북한 전쟁고아에 대한 실화를 받고 고통으로 읽히는 것, 눈물이 나면서 이상했죠. 운명처럼 느꼈던 것 같아요.”
꽃제비에 대한 궁금증은 1950년대 전쟁고아 1,500여 명이 폴란드로 건너갔었다는 실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세계전쟁의 후폭풍으로 폐허가 된 폴란드 바르샤바와 한국전쟁의 흉터로 폐허가 된 북한 평양의 상처,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폴란드의 고아가 성장해 북한에서 온 고아를 가르치는 선생님의 만남. 상처의 연대에 대한 상상은 그를 카메라 앞에 세웠다.
“폴란드로 간 북한 전쟁고아의 이야기를 접한 건 2014년이었고 그때부터 1년 반 정도 극 영화 시나리오를 썼어요. 과거 전쟁고아들을 거뒀던 프아코비체 양육원 원장님이 현재 93세인데 이야기를 하던 중 이 내용이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아, 먼저 다큐멘터리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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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으로 흘러간 시간이었어요. 그 여정을 그대로 담고 싶었던 거 같아요. 영화를 시작한 계기를 설명하지 않으면 뜬금없어 친절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 이야기부터 시작했어요.”
1973년생인 추상미 감독은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으로 널리 알려진 배우 고 추송웅의 딸이다. 1994년 연극 ‘로리타’를 통해 배우로 데뷔한 뒤 배우로 활약했지만 2008년 드라마 ‘시티홀’을 끝으로 연기를 접었다. 추상미는 영화에서 자신의 말로 연기를 접게 된 자신의 고민을 드러낸다. 추상미는 배우를 준비하는 이송에게 “상처가 배우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가”라고 묻는다. 탈북 과정에서 겪은 상처를 차마 말 못하는 이송에게 자신을 되돌아 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배우는) 상처를 객관화해야 한다”라는 또 다른 대사는 배우로서 회의감을 가졌던 자신에게 또 다른 다짐을 하는 말과 다름없다.
“단편영화를 두 편 찍었어요. 두 작품 모두 상처에 대한 고민만 하다 끝난 듯해요. 이제 나름의 해답을 찾았어요. 폴란드 선생님들이 역사의 상처를 다른 민족의 아이를 품는 데 선하게 썼잖아요. 개인의 상처에서든 역사의 상처에서든 선한 무언가, 아름다운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죠.”
영화 말미에 93세의 나이에 접어든 폴란드 선생님이 “그때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전해달라”라고 말한다. 추상미는 통일이 추상적이었으나 그 말을 듣고 자신에게 통일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했다.
“그 말을 전달하려면 통일이 되어야 하잖아요. 전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를 크게 고민해본 적이 없어요. 아마 많은 사람이 이런 경험들을 통해 상처에 연대하고 공감하면서 한 발짝 나아가게 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