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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울산현대를 8년 만에 아시아 프로축구 정상에 올려놓은 김도훈 감독의 소감이다. 울산이 어떻게 ‘준우승 트라우마’를 딛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는지 잘 보여준다.
울산은 지난 19일 밤(한국시간) 카타르 알와크라의 알자누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결승전에서 페르세폴리스(이란)를 2-1로 이겼다.
울산 2012년 이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8년 만에 두 번째 우승을 이뤘다. ACL에서 K리그 팀이 우승한 것은 2016년 전북현대 이후 4년 만이다.
울산은 ‘아시아 챔피언’이라는 명예와 함께 엄청난 돈방석에도 앉게 됐다. 이번 대회 우승 상금은 400만 달러(약 44억 원). 이 가운데 5%는 ‘AFC 드림 아시아 재단’ 기금에 자동으로 적립된다. 이를 제하더라도 울산은 40억원에 가까운 막대한 돈을 손에 넣게 된다.
여기에 경기당 성적 보너스도 지급된다. 조별리그에서 승리 하면 5만달러, 무승부는 1만달러를 받는다. 16강전부터는 10만달러, 15만달러(8강전, 25만달러(4강전)의 출전 수당이 더해진다. 보너스까지 포함하면 총 50억원이 넘는 돈을 챙긴다.
울산은 내년 2월 카타르에서 열릴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참가 자격도 획득했다. 이 대회는 각 대륙별 클럽 챔피언이 모여 세계 최강을 가리는 대회다,
클럽 월드컵 우승 상금은 500만달러, 준우승 상금은 400만달러에 이른다. 최하위인 7위를 해도 최소 50만달러의 상금이 주어진다. ACL 우승팀은 1라운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2라운드부터 나갈 수 있다. 대회 참가만으로도 최소 6위를 확보해 100만달러(약 11억원)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패배의식을 내던지고 ‘우리도 우승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점이다. 울산은 K리그1 정규리그에서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준우승에 그쳤다. 두 시즌 모두 줄곧 선두를 달리다 막판 전북현대에게 덜미를 잡혔다.
올해는 FA컵에서도 결승에서 전북에 패했다. ‘2인자 징크스’에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눈물을 흘려야 했다. 울산은 K리그1에서만 역대 최다인 9차례나 준우승을 기록했다. 준우승도 값진 결과지만 우승을 눈앞에 두고 이루지 못하는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울산은 아시아 최강팀을 가리는 최고 권위의 클럽 축구 대항전에서 우승하면서 자존심을 회복했다. 그동안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주저 앉았던 아쉬움을 단번이 씻어냈다.
사실 울산은 이번 대회가 쉽지 않았다. 좌절감을 맛본 선수들이 동기부여를 다시 세우는 것이 어려웠다. 게다가 올해가 계약 마지막 해인 김도훈 감독은 이 대회 결과와 상관없이 팀을 떠나게 되는 상황이었다. 리더십 공백도 우려됐다.
설상가상으로 주전 골키퍼 조현우는 국가대표팀 원정 평가전에 참가했다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울산에게는 마이너스 요인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시련은 팀을 똘똘 뭉치게 했다. 선수들은 김도훈 감독과 함께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의지를 새롭게 다졌다. 김도훈 감독은 선수들이 지나친 부담을 갖기를 바랐다. ‘욕심을 버리고 즐기면서 하자’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감독과 선수의 마음이 통하면서 팀은 하나가 됐고 기적을 만들기 시작했다. 울산은 이번 대회 10경기에서 9승 1무로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대회가 중단됐다가 중립지역인 카타르에서 재개된 이후 조별리그 2차전부터 결승전까지 9경기를 모두 이겼다. 그 9경기에서 모두 2골 이상을 기록하는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했다.
울산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이청용, 윤빛가람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그렇게 구축한 풍부한 선수층이 이번 대회에서 빛을 발했다. 카타르에서 치른 9경기에서 기록한 22골 가운데 10골을 교체로 들어간 선수가 기록했다. ‘벤치멤버도 국가대표급’이라는 평가가 경기 내용으로 입증됐다.
울산은 우승 확정 후 4년간 팀을 이끈 김도훈 감독과 아름다운 이별을 공식 발표했다. 시상식을 마치고 카타르 현지에서 감사패를 전달하며 그간의 노고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김도훈 감독은 “내 역할은 여기까지이며 집에 가서 와인 한잔하며 쉬고 싶다”고 말했다.
김도훈 감독은 “축구가 즐거워야 되는데 준우승을 두 번 하다 보니 즐겁지 않았다”며 “오죽했으면 카타르에 오지 않을 생각까지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우리 선수들은 대단하고 정말 잘해줬다”며 “같이 한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고 좋은 시즌이었다”고 공을 선수들에게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