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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급 없지만…투톱 케미·다양한 소재 눈길
극장에서 여름 시장은 보통 6월을 시작으로 8월까지 약 3달 정도의 기간을 통칭한다. 올해 이 기간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둔 한국 영화만 10여 편에 달한다. 6월 초 ‘원더랜드’를 시작으로 ‘하이재킹’, ‘핸섬가이즈’, 7월 ‘탈주’,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이하 ‘탈출’)가 이미 개봉했다. 다가올 8월은 이달 말 ‘파일럿’(감독 김한결)을 시작으로 ‘리볼버’(감독 오승욱)와 ‘행복의 나라’(감독 추창민), ‘빅토리’(감독 박범수), ‘필사의 추격’(감독 김재훈), ‘한국이 싫어서’(감독 장건재), ‘늘봄가든’(감독 구태진) 등 6개 이상의 작품이 시차를 두고 쏟아져나와 열띤 경쟁을 펼친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여름 극장은 국내 대형 배급사들이 내세운 간판급 블록버스터들이 ‘빅4’ 혹은 ‘빅5’의 형태로 구도를 형성해 외화들과 대적하는 게 통상적이었다. 올해는 다르다. 여름 한국 영화 중 각 배급사의 ‘간판 영화’라 불릴 작품이 없다. 국내 영화는 관행상 손익분기점(BEP)이 최소 300만~500만명 이상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텐트폴이라고 부른다. 앞서 개봉한 작품 중에선 ‘탈출’(BEP 400만명), ‘하이재킹’(BEP 300만명)이 그나마 이에 가깝다.
8월은 손익분기점 300만명을 넘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 ‘행복의 나라’가 BEP 약 270만명 정도로 가장 많은 제작비를 들였고, ‘파일럿’과 ‘빅토리’는 약 200만명, ‘리볼버’가 약 140만명 정도다. 화려한 스케일은 없지만, 배우의 연기력과 케미스트리를 강점으로 투톱 주연을 내세운 작품이 눈에 띈다.
8월 14일 개봉하는 ‘행복의 나라’는 배우 조정석과 지난해 세상을 떠난 고(故) 이선균이 호흡을 맞춘 현대사 소재 영화다. 1979년 10월 26일, 상관의 명령에 따라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된 박태주(이선균 분)와 그의 변호를 맡으며 최악의 정치 재판에 뛰어든 변호사 정인후(조정석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지난해 1300만 관객을 동원한 현대사 영화 ‘서울의 봄’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또 다른 실화 사건을 조명해 눈길을 끈다.
같은 날 개봉하는 ‘빅토리’는 이혜리와 박세완 등 청춘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1990년대 Y2K 문화, 대중가요 등 레트로 감성, 치어리딩과 같은 특색있는 소재 및 우정 서사로 MZ세대, 40대 이상 관객 모두 사로잡겠단 전략이다.
이는 팬데믹 이후 급변한 극장 흥행 패턴에 발맞춰 배급사들도 개봉 전략에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여름, 추석 등 성수기에 개봉한 텐트폴이 한두 작품을 제외하고 흥행에 참패한 선례에서 비롯됐다. 팬데믹 전까진 극장을 먼저 방문해 그곳에서 볼 영화를 결정하는 관객들이 많았지만, 영화 관람료가 상승한 후 개봉 전 보고 싶은 영화를 엄선해 극장을 찾는 관객이 대부분이란 분석이다. A 영화 제작사 대표는 “비수기로 불리던 지난해 11월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 2월 개봉한 ‘파묘’가 오로지 입소문으로 시기적 한계를 딛고 천만 영화가 된 경험을 통해 변화를 더욱 확신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성수기, 비수기의 구분이 무색해진 만큼, 위험을 감수해 대작을 배치하기보단 특정 관객층을 공략해 손익분기점 이상 관객을 모을 중형 영화들을 먼저 분배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꾼 것”이라고 부연했다.
출혈이 큰 경쟁을 피하려는 배급사들의 개봉 전략이 가져올 우려도 이어진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예전보다 관객들이 느리게 영화관을 찾는 상황에서 한꺼번에 여러 작품이 상영관을 나눠 가져야 하는 부작용도 생겨났다”며 “작품들 각각의 작품성과 대중성이 낮진 않으나 ‘서울의 봄’이나 ‘파묘’처럼 두드러지게 눈에 띌 만한 화제작도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