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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소재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의 지난달 30일 조사에서도 “러시아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응답은 55%로 지난해 말 67%에서 급락했다. 전쟁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데니스 볼코프 레바다센터 소장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 피로감에 세금 압박과 경제 악화가 겹치면서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는 당초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일찍 끝낼 것으로 봤으나, 4년 2개월 가량 지난 현재까지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이 러시아 영토 깊숙이 도달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과 고금리가 지속되고 있다. 흑해 연안 도시 투압세에선 인근 로스네프트 정유시설이 드론 공격을 받아 시 전역에 유독 가스가 퍼져 지방정부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했다.
지난해부터는 인터넷 통제가 강화하며 대중 분노에 기름을 붓고 있다. 크렘린궁은 안보 조치라는 명분으로 인터넷 제한을 강화해 왔지만, 일상생활에까지 침투한 검열에 국민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도 치안기관의 가혹한 단속이 과연 현명한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오는 9월 의회 선거에서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뇌관은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모나코 거주 러시아 출신 미인 블로거 빅토리아 보냐가 지난달 중순 푸틴 대통령에게 띄운 영상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1400만명을 보유한 그는 “사람들이 당신을 두려워한다. 당신은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고 직격했다.
영상 조회수는 3000만회를 돌파했고 댓글은 8만 6000여개가 달렸다. 크렘린궁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변인은 이례적으로 “보냐가 제기한 문제들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충성파 진영의 균열도 본격화하고 있다. 한때 친(親)크렘린 활동가였던 일리야 레메슬로는 텔레그램에서 “체제는 심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푸틴은 올해 권력을 잃을 것”이라고 적었다. 우크라이나전 패배에 실망한 민족주의 블로거 막심 칼라슈니코프도 지난 2일 “지금 러시아 상황은 브레즈네프 시기 소련의 부패·붕괴와 닮았다”고 진단했다.
가장 충격적인 발언은 의회 제2당 공산당 당수인 겐나디 주가노프에게서 나왔다. 그는 지난달 의원들에게 “경제가 무너질 것이라고 10번이나 말했다. 지금 당장 재정·경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올가을 1917년 사태를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산당 측은 1917년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같은 해 2월 황제 니콜라이 2세가 퇴위하고 임시정부가 들어선 ‘2월 혁명’을 가리킨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어느 쪽이든 크렘린궁에는 위협적이긴 마찬가지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9일 전승절 연설에서 강경한 대국민 메시지를 낼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리는 올해 군사 퍼레이드에는 중장비를 등장시키지 않기로 했다. 이는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지율 66%는 여전히 높은 수준인 만큼, 26년간 권력을 유지해온 푸틴 대통령의 자리가 당장 흔들릴 조짐은 없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모스크바의 정치 분석가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는 “지금은 강력한 (정부) 탄압 때문에 시위로 분출되지 못하지만, 불만은 지하에서 타는 불씨처럼 쌓이고 있다”며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한 시점에,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