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록 기자의 이런여행]
히로사키의 개화기 풍경 지나 만난 가즈노
온천마을 료칸엔 옛 무사의 삶이 곳곳에
고쇼가케 온천엔 치유와 비극의 전설 공존
땅의 열기로 피로 씻고 숲에서 활력 재충전
돌아온 아오모리선 일본 전통 문화 체험
[아키타·이와테·아오모리(일본 북도호쿠)=글·사진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북도호쿠에서는 여행의 속도가 자연스레 느려진다. 도쿄나 오사카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밀려드는 인파에 지친 여행자에게 혼슈 북단의 북도호쿠(北東北)는 감추어진 마지막 여백처럼 다가온다. 거대한 산맥과 태고의 숲을 품고 있는 이곳은 무언가를 바쁘게 찾아다니고 채워 넣어야 했던 여정에서 벗어나 지친 마음을 가만히 내려놓고 휴식에 몰입할 수 있는 고즈넉한 땅이다. 덕분에 북도호쿠는 아직 한국인 여행자들에게 낯설다. 깊은 산중에 명소들이 알알이 흩어져 있어 여정을 세심하게 엮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바로 그 한적함 덕분에 이곳에는 대자연의 원형과 예스러운 역사, 그리고 인간의 삶을 다독여온 문화가 남아 있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온천 또한 혹독한 추위와 지형을 견뎌내야 했던 이들이 삶을 보듬고 치유하던 공간이었다.
 | | 아오모리 공항의 내부모습(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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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오모리의 사과나무에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아오모리는 일본을 대표하는 사과 산지로, 히로사키 일대에도 사과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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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키타현 오유온천의 류몬테이 치바료칸 정원. 해가 진 뒤 조명이 켜지면 연못과 나무가 수면 위에 비친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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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늦은 밤 류몬테이 치바료칸의 노천탕. 정원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 이 료칸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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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무사가 만든 전통 료칸 ‘류몬테이 치바료칸’ 아오모리공항에서 첫발을 디딘 곳은 옛 성곽도시 히로사키다. 히로사키성은 1611년 완성됐지만 당시 천수는 1627년 낙뢰로 소실됐다. 지금 남아 있는 3층 목조 천수는 약 200년 뒤인 1810년 다시 세운 것이다. 일본에 남아 있는 ‘현존 12천수’ 가운데 하나다. 성 주변 옛 무사들의 저택이 남아있는 부케야시키에는 정갈한 고요함이 흐른다. 이 고요한 도시가 사과의 성지로 거듭난 내력은 150여 년 전 메이지 유신 무렵으로 올라간다. 메이지 시대 들어 생계 기반을 잃은 옛 사족들에게 새로운 산업으로 사과 재배가 장려됐다. 옛 히로사키번사들도 사과 재배와 보급에 참여했고, 그렇게 뿌리내린 사과는 오늘날 아오모리를 대표하는 작물이 됐다.
붉은 지붕의 구 히로사키시립도서관, 옛 아오모리은행 본점 같은 개화기 양관(서양식 건물)이 정답게 어우러진 시내를 보고난 후 아키타현 가즈노시의 오유온천으로 길을 잡았다.
 | | 히로사키 네푸타무라 내부. 부채꼴 형태의 대형 네푸타와 북 등 히로사키 네푸타 축제에 사용되는 장식과 도구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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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후지타기념정원의 일본식 정원. 연못과 다리, 다듬은 소나무를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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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히로사키성에서 바라본 이와키산. 히로사키 시가지 너머로 완만한 산줄기가 펼쳐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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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히로사키 네푸타무라에 전시된 대형 네푸타. 무사와 설화 속 인물을 강렬한 색과 선으로 표현한 등불 장식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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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다호 남쪽 오유강 줄기를 따라 들어앉은 오유온천은 오랜 역사를 지닌 도호쿠의 고탕(古湯)이다. 옛 난부번(南部藩) 영주가 탕치장으로 이용했고, 예부터 길 가던 나그네들이 여장을 풀고 피로를 씻어내던 곳이다.
이 온천마을에서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온 곳이 ‘류몬테이 치바료칸’으로 옛 무사의 내력이 이어지는 전통 여관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오랜 세월 손길과 발길이 스쳐 윤이 반질반질 나는 목조 마룻바닥이 반긴다. 조심스레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룻바닥에서 ‘삐걱, 삐걱’ 소리가 시골 외가에 온 듯 풋풋하고 정겹다.
 | | 아키타현 오유온천의 류몬테이 치바료칸 실내 탕의 모습(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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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제철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한 가지씩 차례로 내는 일본식 코스요리인 ‘가이세키’가 상에 오른다. 아키타 소고기를 편백나무 향과 함께 쪄낸 편백찜부터 노릇하게 구운 은어, 사과 그라탱까지 이 지역의 산과 들에서 난 재료가 한 상에 이어진다. 그중에서도 송이와 해산물 등을 작은 주전자에 넣고 맑은 육수와 함께 쪄낸 ‘도빈무시’가 입맛을 돋운다. 뚜껑을 여는 순간 송이 향이 먼저 피어오르고,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이 길 위에서 식은 몸을 부드럽게 데운다.
밤이 깊어 갈 무렵, 낮엔 남과 녀로 나뉘었던 탕이 서로 교대되면 치바료칸의 진짜 매력이 드러난다. 소나무와 자연석이 잡힐 듯 다가오는 돌탕(석조탕)과 은은한 편백나무 향이 아늑하게 밀려오는 히노키탕을 차례로 넘나든다. 매캐한 유황 향 대신 맑고 매끄러운 온천수가 어깨를 감싸 안을 때, 들리는 건 정원의 대나무 관을 타고 떨어지는 물소리와 내 가쁜 숨소리뿐이다. 옛 무사의 내력이 깃든 고택에서 비로소 밤의 고요가 완성된다.
 | | 고쇼가케온천의 온돌 공간. 칸막이로 나뉜 자리마다 누워 지열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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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비 내리는 아키타 하치만타이 고쇼가케 자연연구로. 산책로 옆으로 온천 증기가 피어오르며 화산지대 특유의 풍경을 만든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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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비 내리는 아키타 하치만타이 고쇼가케 자연연구로. 산책로 옆으로 온천 증기가 피어오르며 화산지대 특유의 풍경을 만든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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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야성의 산이 품은 유황 지옥 ‘고쇼가케’ 이튿날 아침. 해발 1000m 고지의 하치만타이 산자락으로 향한다. 본래 하치만타이 산행의 묘미는 능선을 따라 걷는 호젓한 트레킹이다. 정상 인근 산책로를 따라 20분 남짓 오르면 분화구 호수인 ‘가가미누마(거울못)’를 만난다. 늦봄 잔설이 녹아내릴 때 푸른 물빛이 도넛 모양으로 고이며 거대한 눈동자 형상을 띠어 ‘드래곤 아이(용의 눈)’라 불리는 장관이다.
아쉽게도 이번 여정엔 산상을 집어삼킨 거센 비바람 탓에 정상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자연이 끝내 허락하지 않은 산정의 풍경을 뒤로하고, 산등성이 아래 온천 열기와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는 고쇼가케 자연연구로(산책로)로 발길을 옮겼다.
산행 들머리에 자리한 고쇼가케온천은 잔잔한 시골 마을의 온천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지의 야성을 드러낸다. 산책로 뒤편으로 들어서자 보글보글 진흙을 분출하며 쌓인 대니화산과 유황 증기가 자욱한 오유누마가 눈앞에 펼쳐진다. 3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이곳에는 “말을 타고 들어왔다가 나막신을 신고 걸어나간다”는 오래된 말이 전한다. 몸이 좋지 않아 말에 의지해 찾아온 이들도 이곳에서 탕치한 뒤 걸어서 돌아갈 만큼 좋아진다는 뜻을 담은 표현이다.
지명에 담긴 ‘오나메’와 ‘모토메’의 전설도 사뭇 애달프다. 병든 남자를 돌본 여인과 먼 길을 찾아온 본처가 서로를 위해 펄펄 끓는 온천 늪에 몸을 던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옥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유황 연기 속 두 분출구 앞에 서면, 삶의 굴레 속 옛사람들의 기구한 사연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유황천의 열기를 몸으로 경험하는 방식도 다채롭다. 나무 상자 속에 몸을 밀어 넣고 얼굴만 쏙 내밀어 증기욕을 즐기는 ‘하코무시’나 걸쭉한 진흙을 이용하는 ‘진흙탕’이 대표적이다. 탕에서 나와 천연 지열이 바닥을 뜨끈하게 데우는 온돌에 누우면, 지열이 등으로 그대로 전해진다.
 | | 비와 안개가 짙어진 아와테현 앗피고원의 너도밤나무숲길을 여행객이 우산을 쓰고 걸어가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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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앗피고원의 명물인 '시라카바노유(자작나무 탕)'는 도호쿠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노천탕이다.(사진=앗피리조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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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저수지’가 대지의 열과 만나 솟구치다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이와테현 앗피고원의 고요한 숲길을 나선다. 해발 800m 안팎에 펼쳐진 이 숲은 한때 숯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냈던 역사를 안고 있다. 인간이 이용했던 숲에는 세월이 흐르면서 다시 너도밤나무(부나)가 자리를 채웠다. 푹신한 낙엽과 흙길을 걸으면 발밑으로 부드러운 흙의 감촉이 전해진다. 너도밤나무 숲은 눈과 비를 머금었다가 천천히 흘려보내 ‘녹색의 댐’으로도 불린다.
앗피리조트의 명물인 ‘시라카바노유(자작나무탕)’는 자작나무 숲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기는 노천탕이다. 하얀 자작나무에 둘러싸인 탕에 몸을 담그면 약알칼리성 온천수가 매끄럽게 피부를 감싼다. 낮에는 하늘로 치솟은 자작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 소리가 스쳐 지나간다. 산을 걷고 난 뒤 숲을 바라보며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일은 북도호쿠의 온천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 | 아오모리현 미사와의 ‘아오모리야 by 호시노리조트’. 아오모리의 전통문화와 축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 리조트 내부 곳곳에 펼쳐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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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오모리현 미사와의 ‘아오모리야 by 호시노리조트’. 아오모리의 전통문화와 축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간이 리조트 내부 곳곳에 펼쳐진다.(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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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의 호젓한 정적으로 마음을 채운 뒤 여정의 피날레인 아오모리현 미사와로 향한다. 목적지는 ‘아오모리야 by 호시노 리조트’. 약 22만평의 부지에 자리 잡은 이곳은 아오모리의 전통문화와 온천 문화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숙박 공간이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연못 한가운데 둥둥 떠 있는 듯한 노천탕 ‘우키유’다. 수면과 탕의 경계가 이어져 있어 물 위에 떠서 목욕을 즐기는 듯한 개방감을 준다. 이마를 때리는 북국의 서늘한 밤바람과 어깨를 감싸는 온천수의 서로 다른 온도가 피부 위에서 만난다. 밤이 깊으면 연못 위 네부타 장식의 불빛이 수면에 비친다.
밤이 깊어지면 아오모리의 축제 문화를 한데 모은 ‘미치노쿠 마쓰리야’ 공연이 펼쳐진다. 네부타 등불이 무대를 채우고 대북 소리가 장내를 울린다. 춤꾼들이 “랏세라, 랏세라!”를 외치며 흥을 돋운다. 우리말의 “얼쑤, 얼쑤!”쯤에 해당하는 네부타 축제 특유의 추임새다. 북소리에 힘찬 구호까지 겹치면서 객석도 어느새 축제의 리듬 속으로 들어간다. 공연이 끝나고 북소리가 잦아들자 다시 북국의 조용한 밤이 찾아온다. 뜨거운 온천수와 서늘한 바람, 숲길과 유황 냄새를 지나온 며칠이 그제야 천천히 떠오른다. 북도호쿠에서 천천히 걷는 데 익숙해진 탓일까. 돌아갈 시간이 다가와도 발걸음은 좀처럼 빨라지지 않는다.
 | | 아오모리의 축제 문화를 한데 모은 ‘미치노쿠 마쓰리야’ 공연(사진=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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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본 북도호쿠 지역여행(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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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수첩 ▲가는 길=인천~아오모리 직항편의 운항 요일과 편수는 계절별로 달라진다. 출발 전 항공사 최신 운항 일정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주요 숙소 안내
-류몬테이 치바료칸(아키타 오유온천)=옛 무사의 내력이 이어지는 전통 여관. 객실에서 조망하는 아담한 일본식 정원이 고즈넉함을 더하며 계절 요리와 온천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앗피리조트(이와테 앗피고원)=너도밤나무 숲 트레킹과 골프 등 다양한 야외 레저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고원 리조트. 자작나무 숲속 노천탕 ‘시라카바노유’가 있다.
-아오모리야 by 호시노 리조트(아오모리 미사와)=아오모리 고유의 문화 체험을 접목한 리조트. ‘미치노쿠 마쓰리야’ 공연을 비롯해 연못 정원과 노천탕 ‘우키유’ 등을 갖췄다.
▲취재협조=일본정부관광국(JN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