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비즈니스나 반도체 연구개발(R&D)에서는 주 52시간제 근로시간 규제는 완화해야 합니다.”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은 13일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 디지털인사이트포럼 특별 간담회에서 최근 호남 반도체 메가특구 관련 노동자의 주 52시간제를 둘러싼 논쟁이 격화하고 있는데 대해 “다른 나라도 같은 법이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업계에서 40년 넘게 몸 담아온 구루가 내놓은 쓴소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R&D엔 52시간제 완화해야”
실제 한국이 일률적인 노동시간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은 ‘자율’에 정책의 방점을 찍고 있다. 이를테면 미국에서는 고소득 전문직을 대상으로 근로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가 운영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그동안 세계와 경쟁하려면 주 52시간제 노동 규제 완화가 절실하다고 토로해 왔다. 권 전 회장은 “우리는 세계와 경쟁하고 있고, 여기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 기업 특유의 노동 경직성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그는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가 해고의 유연성이 ‘제로(0)’라는 것”이라며 “모든 조직에는 저성과자가 있는데 그를 내보낼 방법이 없다. 이렇게 되면 조직 생산성이 좋아질 수가 없다”고 말했다.
권 전 회장은 반도체 성장만으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AI 시대에는 과거처럼 선진 기업들을 따라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과 사업모델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해방 이후 최빈국에서 선진국 문턱까지 온 것은 퍼스트팔로워 전략, 즉 카피해서 성공한 것”이라며 “대만 TSMC는 왜 존경 받는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처음으로 만든 곳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그 연장선상에서 한국의 성장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했다. 권 전 회장은 “지난 10년간 기업에 무슨 변신이 있었나. 정부와 교육기관은 어땠는가”라고 반문하며 “패스트팔로워 성공 모델이 계속 유효할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지금 같은 메모리 대호황 예상 못해”
권 전 회장이 반도체를 두고 추후 10년 성장 산업이라고 언급한 점도 주목된다. 그는 “반도체는 피지컬 AI, 휴머노이드, 자율주행자동차 등 새로운 수요처가 계속 나오고 있어서 볼륨 자체가 성장 산업”이라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저도 예상하지 못한 정도의 대호황을 맞았다. 전 세계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반도체는 3~4년마다 사이클이 있다고 했지만 당시에는 메모리의 80~90%가 PC 수요에 의존했다”며 “지금은 새로운 수요처가 계속 나오고, 수많은 데이터를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반도체 수요는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메모리 시장 규모는 빠르게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메모리 시장 규모는 전년 360조원에서 4배 이상 성장한 15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서 서버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메모리 매출에서 서버용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37%에서 올해 56%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는 최근 메모리 기업들이 앞다퉈 생산시설 증설에 나서는 흐름과도 맞물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호남권 반도체 생산시설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최근 사회 전반의 화두로 떠오른 이른바 ‘N% 성과급’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연동 N%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에 대해 “5년, 10년 후의 그림을 그리고 그에 맞게 평가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기업들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