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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10억톤을 통째로 망원경으로”…노벨상 받은 ‘아이스큐브’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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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기자I 2026.10.06 21:5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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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2.5㎞ 아래 센서 5160개…‘유령 입자’로 우주 관측
34년 만의 단독 수상…벨기에 출신 할젠 교수
성균관대·중앙대 연구진 참여…국제공동연구 동참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얼음 10억톤을 통째로 망원경으로 쓴다고?”

말만 들으면 엉뚱한 상상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제 남극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졌다. 거대한 얼음 속에 5000개가 넘는 센서를 묻어 우주에서 날아오는 ‘유령 입자’를 잡아낸 것이다.

프로젝트 이름은 ‘아이스큐브(IceCube)’다. 이를 이끈 벨기에 출신 과학자 프랜시스 할젠(82)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 교수가 202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6일(현지시간) 할젠 교수를 올해 노벨 물리학상 단독 수상자로 선정했다. 우주에서 날아오는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관측해 새로운 우주 관측 영역을 연 공로다.

거대한 남극 얼음층 자체를 탐지기로 쓰는 아이스큐브. 출처: IceCube Neutrino Observatory -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거대한 남극 얼음층 자체를 탐지기로 쓰는 아이스큐브. 출처: IceCube Neutrino Observatory - 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남극 얼음이 거대한 검출기로

중성미자는 우주 곳곳에서 만들어져 지구까지 날아오는 아주 작은 입자다.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아 지구는 물론 사람의 몸도 그대로 통과한다. 그래서 ‘유령 입자’라고 불린다.

잘 잡히지 않는 대신 우주를 날아오는 동안 다른 물질에 거의 방해받지 않아 어디에서 출발했는지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그대로 간직한다.

할젠 교수와 연구진은 이 특징에 주목했다. 중성미자가 얼음 속 물질과 아주 드물게 부딪히면 희미한 빛이 생긴다. 이 빛을 잡아내면 중성미자의 방향과 에너지를 추적할 수 있다.

아이스큐브는 남극점 아래 약 1.5~2.5㎞ 깊이, 약 1㎦ 규모의 얼음에 5160개의 광학센서를 설치했다. 뜨거운 물로 얼음을 깊숙이 뚫고 센서를 집어넣었다.

남극의 얼음 약 10억톤이 거대한 입자 검출기로 변한 셈이다.

중성미자가 얼음 속에서 충돌할 때 생기는 희미한 빛을 센서가 포착하면 그 흔적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블랙홀 주변이나 활동은하핵처럼 지구에서 직접 보기 어려운 우주의 극한 현상을 추적할 수 있다.

망원경으로 직접 빛을 보는 대신 중성미자가 남긴 흔적을 통해 우주를 보는 새로운 방법이 열린 것이다.

김찬주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번 노벨 물리학상은 우주를 보는 새로운 ‘감각’을 개발한 공로라고 볼 수 있다”며 “인류는 오랫동안 빛으로만 우주를 관측했지만, 이제 중력파와 중성미자를 통해 빛으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우주 현상을 알아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2026 노벨 물리학상 단독 수상자 프랜시스 할젠. 출처: Wisconsin IceCube Particle Astrophysics Center
2026 노벨 물리학상 단독 수상자 프랜시스 할젠. 출처: Wisconsin IceCube Particle Astrophysics Center
34년 만의 단독 수상

이번 노벨 물리학상은 34년 만의 단독 수상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최근 물리학상은 대형 국제연구가 늘면서 여러 과학자가 공동 수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독 수상은 1992년 입자 검출기를 개발한 조르주 샤르파크 이후 처음이다.

특히 아이스큐브에는 전 세계 수백명의 연구자가 참여했다. 그럼에도 할전 교수 한 명에게 상이 돌아갔다.

최고운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차세대연구리더는 “할전 교수는 극지방의 깊은 얼음을 검출기로 활용해 초고에너지 중성미자를 관측한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하고 이를 실제 실험으로 구현한 개척자”라며 “아이스큐브는 2013년 은하 밖에서 날아온 고에너지 중성미자를 처음 포착한 데 이어 블레이저 등에서 중성미자 신호를 확인하며 새로운 천문학의 영역을 열었다”고 설명했다.

중성미자는 과거에도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이었다. 2002년에는 태양과 초신성에서 오는 중성미자를 검출한 레이먼드 데이비스와 고시바 마사토시가, 2015년에는 중성미자 진동을 발견한 가지타 다카아키와 아서 맥도널드가 수상했다.

이번에는 훨씬 높은 에너지의 중성미자를 이용해 우주의 극한 현상을 관측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왜 중성미자인가

중성미자를 쉽게 말하면 ‘우주의 메신저’다. 우주에는 블랙홀 주변처럼 엄청난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중성미자가 지구까지 날아오면 우리는 그 흔적을 통해 우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추적할 수 있다.

중성미자는 전기를 띠지 않고 다른 물질과 거의 부딪히지 않는다. 우주 공간의 자기장에도 휘어지지 않아 지구에 도착했을 때 출발점에 대한 정보를 비교적 그대로 간직한다.

문제는 잡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스큐브는 남극 얼음 속에 수천개의 센서를 묻어놓고 중성미자가 아주 드물게 얼음 속 물질과 부딪히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때 생기는 아주 작은 빛을 포착해 흔적을 거꾸로 추적한다. 깜깜한 방에서 아주 드물게 번쩍이는 빛을 기다렸다가 그 빛이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를 알아내는 것과 비슷하다.

강성주 천체물리학자(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는 “아이스큐브가 검출한 고에너지 중성미자는 ‘우주의 입자가속기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빛과 전파, 중력파에 이어 중성미자까지 활용하면서 같은 우주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는 ‘다중신호 천문학’으로도 연구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할젠 교수의 출발점은 벨기에

할젠 교수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연구했지만 과학자로서의 출발점은 벨기에였다. 벨기에 티넌에서 태어난 그는 뢰번 가톨릭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뒤 스위스 CERN에서 연구했고, 197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가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연구를 이어갔다.

이번 수상으로 벨기에는 2013년 프랑수아 앙글레르 이후 13년 만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를 다시 배출했다.

인구 1200만명 안팎의 작은 나라이지만 연구개발과 과학 인프라에 꾸준히 투자하며 유럽의 과학 강소국으로 자리 잡았다. 뢰번의 반도체 연구기관 아이멕(imec)과 뢰번 가톨릭대·헨트대 등 연구중심 대학이 대표적이다.

특히 기초과학에 장기간 투자하고 연구기관과 산업을 연결하는 생태계가 강점으로 꼽힌다.

아이스큐브 역시 처음부터 산업화를 목표로 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중성미자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라는 기초과학의 질문에서 시작했고, 답은 뜻밖에도 남극의 얼음이었다.

한국 연구진도 참여

한국 연구진도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성균관대와 중앙대 연구진이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최근 아이스큐브 업그레이드에서도 국내 연구진이 검출기를 정밀하게 보정하기 위한 장비 개발 등에 참여했다.

강 천체물리학자는 “한국 연구진이 초대형 국제공동연구에서 결과를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관측 장비와 분석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남극의 얼음 10억톤을 거대한 망원경으로 바꾼 아이디어는 인류에게 새로운 우주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노벨 물리학상은 한 과학자의 성취를 넘어, 당장 쓸모를 찾기보다 기초과학에 오랜 시간 투자해온 작은 나라 벨기에의 저력까지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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