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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회원국도, 단순 FTA 상대도 아닌 ‘제3의 길’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준회원국’이라는 지위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EU 조약에는 준회원국이라는 법적 지위가 규정돼 있지 않다. 캐나다가 정식 회원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EU 정회원국은 원칙적으로 유럽 국가만 가입할 수 있으며 단일시장 접근뿐 아니라 EU 정책 결정에 대한 투표권과 대표권, EU 재정 지원 등의 권리를 갖는다.
이번 구상은 그보다 느슨하면서도 기존 FTA보다는 훨씬 강한 관계를 만드는 일종의 ‘맞춤형 회원국’ 모델에 가깝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협상 대상이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 혼자 결정할 수도 없다. EU 회원국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만약 준회원국이라는 새로운 법적 지위를 EU 조약에 공식적으로 신설하려면 2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와 각국의 비준까지 필요하다. 로이터에 따르면 한 EU 외교관은 아직 “아무도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다만 양측이 원하는 방향은 상당히 구체적이다. 제조업 공급망을 연결하고 공동 기술동맹을 구축하는 한편 방위산업 기반을 통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AI와 디지털 규제, 에너지, 핵심광물에서도 협력을 확대하고 북극 개발을 공동 핵심사업으로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공동 클라우드·데이터센터와 캐나다산 에너지의 유럽 공급 확대, 일부 상호 무비자 여행·취업 제도까지 논의 대상이다.
왜 캐나다인가…美 의존 줄이려는 카니
캐나다 입장에서는 미국에 지나치게 집중된 경제구조를 바꾸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카니 총리는 미국과의 통상 갈등이 격화한 이후 향후 10년간 미국 이외 국가와의 교역을 두 배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캐나다 정부는 유럽과의 관계 강화를 전략적 자율성과 경제·안보 주권을 강화하기 위한 핵심 수단으로 보고 있다.
카니 총리는 전날에도 캐나다가 EU의 방위조달 프로그램인 ‘유럽안보행동(SAFE)’에 참여하는 첫 비유럽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며 다음 달 EU와 새로운 경제·안보 동맹 구축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캐나다가 미국과 계속 중요한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핵심 산업에서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U에도 캐나다는 매력적인 파트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와 방위 역량 강화가 시급해진 유럽에 캐나다는 에너지와 핵심광물, 방위산업을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 우방국이다. 동시에 AI와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미국과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 캐나다 정부 역시 이날 폰데어라이엔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핵심광물과 에너지, 국방, 연구개발, 첨단기술을 우선 협력 분야로 제시했다.
이미 경제적 기반도 마련돼 있다. EU와 캐나다는 2017년 포괄적경제무역협정(CETA)을 잠정 발효했다. 이후 양측의 상품·서비스 교역은 2016년 721억유로에서 지난해 1300억유로(약 205조3000억원)로 약 80% 증가했다. 현재 양측 간 관세 품목의 99%가 철폐됐고 EU는 미국에 이어 캐나다의 두 번째로 큰 교역 상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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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준회원국 구상이 현실화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가장 민감한 문제는 EU 단일시장 접근과 규제다. 노르웨이 등 비회원국이 EU 단일시장에 깊숙이 참여하려면 EU 규정을 상당 부분 받아들여야 한다. 캐나다가 비슷한 수준의 시장 접근을 원할 경우 상품·서비스 규정을 EU 법규에 맞춰야 하지만 정책 결정에는 정회원국처럼 참여하지 못하는 이른바 ‘룰 테이커(rule-taker)’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캐나다의 통신·낙농시장 개방 등도 양측의 오랜 쟁점이다.
기존 CETA조차 아직 완전히 비준되지 않았다.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27개 회원국 가운데 10개국이 국내 비준 절차를 끝내지 않았다. 캐나다 내에서도 EU 규제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기업 부담이 커지고 정책 주권이 약화할 수 있다는 야당의 반발이 나온다.
따라서 이번 제안으로 캐나다가 곧바로 EU 단일시장에 들어가거나 유럽인과 캐나다인이 자유롭게 이동·취업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양측은 다음 달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EU·캐나다 정상회의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카니 총리도 EU ‘가입’이 아니라 기존에 없던 ‘독특한 동맹(unique alliance)’을 추구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구상이 갖는 더 큰 의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구축된 서방 경제·안보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이 미국을 통하지 않는 새로운 연결망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는 캐나다를 위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지위가 향후 영국이 EU와 관계를 다시 강화하는 모델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당장 캐나다가 ‘EU 28번째 회원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제안이 현실화한다면 EU는 정식 회원국 중심의 기존 통합 모델에서 한발 더 나아가 가치를 공유하는 비유럽 국가까지 경제·안보망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형태의 블록으로 확장할 수 있다. 캐나다 역시 미국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유럽과 북미를 잇는 경제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다만 준회원국의 권리와 의무 자체가 백지상태인 만큼 실제 변화의 범위는 앞으로의 협상 결과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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