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란티어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생성형 AI를 제공하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의 생산·재고·설비·품질·재무 등 서로 다른 시스템에 분산된 데이터를 통합하고, 이를 토대로 AI가 업무 상황을 분석해 의사결정을 돕는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대표 제품은 데이터 플랫폼 파운드리(Foundry)와 AI 플랫폼 AIP(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다. 파운드리가 기업 내 여러 시스템에 흩어진 데이터를 연결해 실제 업무와 연관된 형태로 정리한다면, AIP는 이 데이터에 생성형 AI와 AI 에이전트를 결합해 분석과 판단, 업무 실행을 지원한다.
기업의 데이터를 단순히 한곳에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데이터가 실제 업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연결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특정 부품의 공급이 늦어지면 해당 부품을 사용하는 생산라인과 납기, 재고, 대체 조달 가능성까지 함께 분석해 대응 방안을 찾는 식이다.
|
국내에서는 KT와 LG CNS가 팔란티어의 기업용 AI 사업 확대를 위한 주요 파트너로 나섰다.
KT는 2025년 3월 팔란티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양사는 KT의 기업 고객 기반과 통신·IT 사업 경험에 팔란티어의 데이터 통합 및 AI 플랫폼을 결합해 국내 기업의 AI 전환(AX)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은행과 보험 등 금융권을 대상으로 상호 독점적 파트너로 영업하기로 했다. KT는 전문 인력을 투입해 팔란티어 글로벌 엔지니어와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기술을 이전받는 방식으로 자체 사업 역량도 키우고 있다.
KT 내부 업무를 대상으로 한 개념검증(PoC)도 진행했다. 대규모 통신 데이터를 활용해 AI 플랫폼 도입 효과를 확인하고, 임직원 대상 전문 교육과 자격증 제도도 운영했다. 팔란티어 솔루션을 외부 고객에게 판매하는 데 그치지 않고 KT 내부에서 먼저 활용 경험을 쌓는 전략이다.
LG CNS는 2026년 3월 팔란티어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팔란티어의 파운드리와 AIP를 국내 고객사에 공급하고, 제조·에너지·전자·물류 등 산업별 AX 사업을 함께 발굴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팔란티어 사업 전담조직인 FDE(Forward Deployed Engineering·전방배치 엔지니어링)도 신설했다. FDE는 고객사 현장에 엔지니어를 배치해 실제 업무 문제를 파악하고 데이터 분석부터 AI 적용, 운영까지 함께하는 방식이다.
LG CNS는 이미 LG 계열사 한 곳의 품질관리 업무에 파운드리와 AIP를 적용하는 PoC를 마쳤고, 이를 토대로 본사업 계약도 체결했다. 자사 내부에서도 플랫폼 검증을 마쳐 사업·운영 데이터 분석과 리스크 예측, 의사결정 지원에 활용하고 있다.
KT가 통신·금융 고객을 대상으로 팔란티어 솔루션의 국내 공급과 사업화를 추진한다면, LG CNS는 산업별 시스템 구축과 AX 사업 수행 역량을 결합해 시장을 넓히는 구조다.
HD현대는 조선 생산성, LIG넥스원은 미래 전장
HD현대는 팔란티어의 국내 산업 협력 사례 중 사업 규모와 적용 범위가 두드러진다.
양사의 협력은 2021년 시작됐다. 초기에는 건설기계와 정유 등 개별 사업 영역에서 협력했지만, 이후 조선 사업까지 확대됐다. 2026년 1월에는 수년간 수억달러 규모로 알려진 전사적 소프트웨어 계약을 맺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양사의 협력은 개별 사업부 적용을 넘어 조선·중공업 전반으로 확대되는 단계다.
조선업은 선박 한 척을 건조하는 데 수많은 자재와 설비, 인력, 공정이 연결되는 대표적인 복합 제조업이다. 자재 조달이 늦어지거나 특정 공정에 문제가 생기면 후속 작업과 선박 인도 일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팔란티어는 자재와 재무 계획, 설비 등 여러 데이터를 통합해 공정 지연 가능성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로이터통신은 HD현대가 팔란티어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선박 건조 속도를 약 30% 높였다고 보도했다. 상선뿐 아니라 군함과 무인수상정 관련 작업도 협력 범위에 포함됐다.
LIG넥스원은 방산 분야에서 팔란티어와 협력하고 있다. 2024년 미래 무기체계 빅데이터 플랫폼 활용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정찰용 무인수상정, 초소형 영상레이더(SAR) 위성, 기뢰 제거, 전자기스펙트럼 작전(EMSO) 등의 개발에 데이터 플랫폼과 AI 기술을 활용하기로 했다.
2026년 3월에는 협력을 한 단계 확대했다. 양사는 아랍에미리트(UAE) 등 수출 대상국의 통합 방공망과 무인체계 솔루션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LIG넥스원의 유도무기와 감시정찰, 무인체계 등 하드웨어·체계통합 역량에 팔란티어의 데이터 기술을 결합해 미래 전장 솔루션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창신과 신발 개발부터 생산까지 연결
이번 창신INC와의 협력은 팔란티어의 제조업 확장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다.
팔란티어는 창신과 파운드리 및 AIP를 활용해 신발 개발부터 샘플 기획, 공장 생산까지 이어지는 업무 데이터를 연결하기로 했다. 개발 단계에서 결정한 제품 사양과 생산 현장의 정보를 공유하고, 공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조기에 파악해 대응하는 구조다. 생산 과정에서 얻은 피드백은 다음 제품 개발과 생산 계획에 반영한다.
양사는 최근 진행한 에이전트캠프(AgentCamp)에서 창신의 실제 데이터를 활용해 초기 업무 흐름을 구현했다. 에이전트캠프는 팔란티어가 기업 현업 담당자와 엔지니어를 연결해 실제 기업 데이터를 바탕으로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업무 적용 가능성을 검증하는 프로그램이다. 일반적인 AI 시연과 달리 기업의 실제 업무 환경에서 데이터 분석과 판단, 실행이 가능한지를 확인한다.
창신은 부산에 본사를 둔 신발 제조기업으로 베트남·중국·인도네시아 등에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전 세계 임직원은 약 8만 명이며 2025년 4월 누적 생산량 10억 켤레를 넘어섰다. 여러 국가의 생산시설과 복잡한 공급망을 운영하는 만큼 제품 개발과 생산 현장의 데이터를 연결하는 것이 생산 효율을 높이는 과제다.
남충일 창신 대표는 개발 단계의 결정이 공장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생산 현장의 피드백을 연결해 문제를 조기에 파악하고 다음 모델에 반영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팔란티어의 국내 사업 확대는 기업용 AI 시장의 경쟁이 모델 성능을 넘어 실제 산업 현장의 데이터와 업무 체계를 얼마나 잘 연결하느냐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마다 생산 방식과 업무 구조, 데이터 환경이 다른 만큼 플랫폼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현장에 맞게 데이터를 정리하고 기존 업무 시스템과 연결해 실제 운영에 안착시키는 역량이 중요하다.
팔란티어가 KT·LG CNS와 같은 국내 파트너를 확보하고 HD현대·LIG넥스원·창신 등 산업별 기업과 협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AI 모델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기업의 실제 운영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산성과 의사결정을 개선하는 산업용 AI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