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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조 몸값’ 대신 실리 택한 크레센도
2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PSP의 최대주주인 크레센도에쿼티파트너스는 지난 24일 시간외 매매를 통해 보유 지분 9.19%를 매각했다. 크레센도가 HPSP 지분을 매각한 건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다. 크레센도는 지난달에도 HPSP 지분 10.05%를 블록딜로 팔아치운 바 있다. 두 차례 블록딜로 크레센도가 보유한 HPSP 지분은 작년 말 기준 39.35%에서 20.11%로 대폭 축소됐다.
당초 크레센도는 2024년 말부터 매각 주관사로 UBS를 선정하고 경영권 지분 전량 매각을 추진했다. 그러나 미·중 갈등과 반도체 업황 불확실성 등이 불거지며 매각은 기약없이 미뤄졌다. 크레센도는 당시 매각 철회를 밝히면서 “자산 매각을 서두르기보다 관심있는 매수자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크레센도의 ‘변심’은 철저하게 계산된 실리적 후퇴로 풀이된다. 무리하게 통매각을 고집하기보다 시장에 물량을 조금씩 넘기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1월과 2월에 걸쳐 확보한 약 3000억원 이상의 자금은 지난해 진행한 인수금융(리캡) 상환에 투입될 예정이다. 고금리 상황에서 파이낸싱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제거하고 펀드 운용의 안정성을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펀더멘털 이상무…독점적 지위 여전
일각에선 대주주의 잇단 이탈에 눈을 흘기지만 수급의 질을 뜯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 24일 블록딜 당일 수급 현황을 보면 크레센도의 물량으로 추정되는 기타법인 매물(3175억원) 가운데 외국인이 2412억원어치를 고스란히 받아냈다. 1월 블록딜 당시 해외 기관 청약 비중이 99%에 달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글로벌 대형 기관들이 HPSP의 장기 성장성을 보고 물량을 대거 흡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대주주 지분 매각 속에서도 HPSP의 본질적인 경쟁력은 여전히 탄탄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HBM(고대역폭메모리)과 AI 반도체 수요 폭증으로 10nm 이하 미세공정이 필수화되면서, HPSP가 독점하고 있는 고압 수소 어닐링 장비는 대체 불가능한 필수재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신규 사업인 고압 산화 공정(HPO) 장비의 가시화도 임박한 상태다.
실적 반등도 올해 가시화될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HPSP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1207억원으로 전년대비 32.94% 급증할 전망이다. 매출과 당기순이익도 각각 2271억원, 1014억원으로 큰 폭의 개선이 기대된다. HBM 공정이 고도화될수록 HPSP의 장비 투입 대수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올해부터 HPO 장비 매출이 본격화되는 점을 감안한 수치다.
문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재 메모리와 비메모리 모두 심각한 공급부족을 외치고 있는 상황에서 선단공정에 집중된 HPSP가 수혜주인 점은 변함이 없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비중이 높은 국내 장비주들 대비 상대적 이익 민감도는 낮을 수 있으나, 펀더멘털 상 업황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낮아진 인수 문턱, SI에겐 기회
이번 블록딜은 단순한 엑시트가 아닌 인수합병(M&A) 구조의 효율화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대주주 지분이 20%대로 낮아지면서 그동안 수조원대 몸값에 압도당했던 전략적 투자자(SI)들이 가시권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결국 크레센도의 잇단 블록딜은 단기적인 수급 부담을 줄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오버행이라는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유동성을 공급하는 단비가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사모펀드의 시계가 엑시트를 향해 가고 있을 때, HPSP의 시계는 글로벌 기술 독점 기업으로서의 2막을 준비하고 있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지분이 분산되면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며 글로벌 반도체 장비사나 국내 대기업들이 전략적 파트너로 진입하기 수월한 구조가 된다”며 “사모펀드라는 특정 주인의 손을 떠나 공적 우량주로 체질이 개선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