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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전 임 부장판사는 언론을 통해 지난해 김 대법원장과의 대화 녹취 파일과 녹취록을 공개했다. 앞서 임 부장판사는 지난해 5월 22일 김 대법원장과 43분여 간 독대하며 자신의 사표 수리와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임 부장판사가 건강상 이유로 사표 수리를 요청하자, 김 대법원장은 “우리가 안 게 하루이틀도 아니고 건강까지 상했다니까 마음이 아프다”며 “우리 임 부장이 다른 어떤 법관보다 남다른 자존심과 의무감이 있는 법관이었는데 법정에 선다는 게 얼마나 죽기보다 싫었을까”라고 답했다.
이어 “사표 수리 여부는 내가 정할 것이고 그 전까지는 병가를 쓰고 푹 쉬시라”며 “(정치권에서) 탄핵하자고 저리 설치고 있는데 내가 지금 사표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또 무슨 얘기를 듣겠냐는 말이야”라고도 말했다.
이어 “탄핵이 돼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면서도 “정치적인 것과 상황은 또 다른 문제니까, (사표가) 수리되면 탄핵 이야기도 못 하게 된다”고도 밝혔다.
이는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에게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이 없다’는 전날 대법원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으로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탄로 난 셈이다.
녹취록 공개 직후 김 대법원장은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했던 기존 답변에서 이와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며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했다.
임 부장판사의 녹취록 공개로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드러나자 판사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재경지법 한 판사는 “김 대법원장이 거짓말 논란에 휩싸인 것도 놀랍지만, 임 부장판사가 녹취를 했다는 것에도 또 한 번 깜짝 놀랐다”며 “면담 당시 또 다른 인물이 배석했던 것도 아니라 당시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 지 난감하다. 연일 법원이 논란의 대상이 되는 것도 유감”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에 대해 김 대법원장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국민의힘은 “녹취록이 사실이라면, 김 대법원장은 이미 법원과 법관들의 리더로서의 자격을 상실했다”며 “법관으로서의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지금 즉시 본인의 거취를 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대법원장과 판사가 빈번히 탄핵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아닐텐데 기억이 불분명하다는 해명엔 설득력이 없다”며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명확한 해명을 했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그간 같은 영남 출신에 대학 선후배의 연까지 엮여 끈끈한 인연을 이어 온 김 대법원장과 임 부장판사는 이번 일로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대법원장과 임 부장판사는 각각 부산고와 진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를 나와 법관으로 임용됐다. 임 부장판사는 김 대법원장의 사법연수원 2년 후배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 2017년 대법원장 후보에 올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임 부장판사에게 자신의 임명 동의안 통과를 위해 친분 있는 야당 의원들을 설득해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고, 임 부장판사는 이를 들어줬다고 알려졌을 만큼 둘은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법 농단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둘의 사이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 임 부장판사는 야구선수 오승환 씨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로 김 대법원장에 의해 징계위원회에 회부되기도 했다. 결국 임 부장판사는 검찰로 넘겨져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 개입 혐의 등으로 기소됐고 국회에선 탄핵 소추안까지 가결됐다. 여기에 더해 임 부장판사가 이날 김 대법원장의 사표 수리를 반려하는 취지의 면담 내용까지 일방 공개하며 이들의 인연은 결국 악연으로 끝날 위기에 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