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서울대 특임교수)가 현재 반도체 특구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는 노동특례를 보다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근로시간 개편 관련 논의가 ‘시간을 얼마나 줄일까’가 아니라 ‘어떻게 일하고 잘 쉬도록 할까’를 묻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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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총재는 6일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행사에서 한은 연구진과 함께 작성한 ‘근로시간 제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논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근로시간 특례 논의를 일부 메가 프로젝트에 한정하지 말고,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과 같은 한국형 유연근로제 도입으로 넓혀야 한다고 제안했다.
연구진은 먼저 현행 주 40시간이 국제적으로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짚었다. 논문에 따르면 주요국 중 법정 근로시간이 주 40시간보다 짧은 나라는 프랑스 정도다.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2000년 2447시간에서 지난해 1846시간으로 약 600시간 줄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과의 격차도 687시간에서 141시간으로 좁혀졌다. 시간당 생산성이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생산성 뒷받침 없이 근로시간만 줄이면 소득 감소와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52시간제 도입 효과 분석은 이 판단의 근거로 제시됐다. 초과근로시간과 초과급여는 각각 7.7%, 6.7% 줄었지만 평균 총급여는 변화가 없었다. 정액급여와 특별급여 등이 늘어 감소분을 메운 것으로 해석됐다.
생산성은 평균적으로 유의한 변화가 없었고, 성과급 비중이 높은 기업일수록 1인당 부가가치가 더 크게 감소했다. 1인당 생산성 증가세도 도입 이전보다 둔화됐다. 연구진은 성과 중심 업무에서는 업무량에 맞춰 시간을 탄력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중요한데, 획일적 규제가 이와 충돌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의도치 않은 소득 양극화 충격도 있었다. 분석 대상 근로자 중 소득 하위 20%는 초과급여가 15.9% 줄고 총급여도 1.3% 감소했고, 상위 20%는 총급여가 1.1% 늘었다. 노조 가입자의 총급여는 0.24% 늘었지만 미가입자는 변화가 없었다. 소득 감소 피해는 저소득 근로자에 집중됐고, 노조 가입자의 소득은 근로시간 단축에도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
‘9 to 6’ 경직된 근로구조 바꿔야…“성과 중심으로”
근로시간 관련 경직성이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하는 표준적인 근로 형태가 강하게 고착돼 있다는 것이다. 근무시간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는 근로자는 33.7%로 유럽(44.1%), 미국(64.0%)보다 낮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한 경험이 있는 근로자도 8.9%로 유럽(31.4%), 미국(55.2%)에 못 미친다. 업무가 몰릴 때 집중하고 이후 쉬는 방식은 어렵다는 이야기다.
유연근로제가 있지만 활용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력근로제 활용 근로자는 임금근로자의 4.7%, 선택근로제는 4.1%, 재량근로제는 1.5%에 그친다. 일별·주별 근로시간 사전 확정, 1개월에 불과한 정산기간, 좁은 대상 업무 등이 걸림돌로 꼽혔다.
근로시간은 길지만 생산성은 낮은 데는 쉬고 싶을 때 쉬기 어려운 문화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유급휴가 소진율은 약 75%로 주요국(90% 안팎)보다 낮다. 이를 상위권 수준인 95%로 높이면 연간 근로시간은 2024년 기준 1828시간으로 미국(1810시간) 수준에 근접한다. 근무시간은 연 31시간(약 4일)이 줄어든다. 연구진은 “소득 감소나 생산 차질을 최소화하면서 실질 휴식을 늘릴 수 있어 일률적 단축보다 우선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핵심 제안은 성과·자율 중심 근로시간제다. 대상은 중위임금 200%, 연 총급여로 약 8200만원 이상인 관리·전문·사무직으로, 약 149만명(상용근로자의 10.8%)으로 추정됐다. 이들 중 동의 절차를 거친 근로자들에게는 주 40시간·52시간 한도와 연장·야간·휴일 가산수당 규정을 적용하지 않되, 확정 급여는 보전하고 사전에 합의한 성과에 추가 보상을 연계하자는 것이다. 연구진은 잠재 대상 근로자의 성과급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은 성과연동 보상체계를 도입할 수 있는 기반이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봤다.
미국은 일정 보수 이상의 관리·전문직에 연장근로수당 지급 의무를 면제하고, 일본은 2019년 연 소득 1075만엔 이상 고숙련 전문직을 대상으로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 적용자의 87.7%가 제도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근로자의 건강 보호를 위한 근무 간 최소 연속 휴식, 휴가 사용 의무화, 장시간 근로 시 건강검진·면담, 근로시간 기록 의무 등 보호 장치가 필요하다는 점도 단서로 달았다. 사용자가 근로시간과 업무 방식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직무는 제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https://image.edaily.co.kr/images/photo/files/NP/S/2026/10/PS2610060147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