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미국 휘발유 가격이 지난해 11월 이후 처음으로 갤런당 3달러를 넘어서면서 오는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공격 결정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
2일(현지시간) 미국 에너지 가격 정보업체인 OPIS의 실시간 정보에 따르면 미국에서 휘발유 평균 소매 가격이 갤런당 3달러를 넘어섰다. 이날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71.23달러로 전장 대비 6.3% 급등했다.
관건은 전쟁의 지속 기간과 에너지 공급 차질의 현실화 여부다. 지상군 투입 없이 이란 내부 권력 균열로 사태가 조기에 정리된다면 유가 상승 압력도 제한적일 수 있다. 하지만 충돌이 장기화하거나 중동 전역으로 확산한다면 유가는 단기 급등을 넘어 구조적인 상승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 여부가 최대 변수다. 이란 혁명수비대(IRGC) 사령관 보좌관인 에브라힘 자바리 소장은 반관영 ISNA통신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은 폐쇄됐다”며 “통과를 시도하는 어떤 선박도 불태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단 한 방울의 석유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발언은 시장을 더욱 긴장시켰다. 이 소식에 국제유가는 장중 8%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리트(UAE) 등 주요 산유국과 아라비아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전 세계 하루 원유 소비량의 약 20%가 이곳을 통과한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케이플(Kpler)에 따르면 전 세계 해상 원유 수출의 3분의 1가량이 이 해협을 경유한다.
글로벌 투자은행도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고, 장기 차질이 발생하면 추가로 40~80달러 추가로 상승할 수 있다고 했다. JP모건은 전쟁이 3주 이상 이어지면 중동 지역의 저장 능력이 한계에 도달해 생산 중단이 불가피해지고 브렌트유가 12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유가 급등이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아직 연방준비제도(Fed)의 목표치인 2% 수준으로 완전히 복귀하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가격이 다시 구조적으로 상승한다면 물가 고착화 우려는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연준의 통화정책 셈법도 복잡해진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인공지능(AI) 중심의 생산성 혁신이 성장과 물가 안정을 동시에 이끌 수 있다고 주장해왔지만, 1990년대와 현재의 거시 환경은 다르다. 당시에는 세계화 확대, 구소련 붕괴 이후 원유 공급 증가, 달러 초강세 등 복합 요인이 저유가 기조를 뒷받침했다는 점에서 현재와 여건이 다르다. 전쟁이 길어지면 인플레이션 압력과 재정 부담이 동시에 드러나며 국채 금리는 추가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달러는 단기적으로 안전자산 수요에 강세를 보이지만, 재정 적자 확대 우려가 커지면 방향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지낸 재닛 옐런 전 재무장관은 이날 캘리포니아주 롱비치에서 열린 S&P 글로벌 컨퍼런스 화상 회의에서 “이란 사태 때문에 연준이 금리 인하에 더욱 주저하게 됐다”며 “이란 사태 이전보다 금리 인하에 대한 의지가 약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
이란 사태 여파는 신흥시장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일부 신흥시장 주가와 통화가 하락하면서 이 시장에 집중적으로 베팅해온 헤지펀드가 투자 포지션 재점검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달러 강세 전환과 브렌트유 급등으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가의 통화와 증시가 압박을 받으면서 그간 확대해온 신흥국 주식·채권 롱(매수) 포지션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한국과 대만 등 AI 관련 수혜주 중심으로 자금이 몰렸던 시장도 사태 장기화 시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대형 매크로 헤지펀드 임원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신흥국 주식과 채권 투자는 손쉬운 일방향 상승 베팅이었지만 이제는 큰 리스크가 됐다”며 “시스템 전반에 레버리지가 상당히 쌓여 있어 업계 전반에 파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글로벌 매크로 책임자인 살만 아흐메드는 “신흥 아시아 국가들의 높은 원유 수입 의존도를 고려해 신흥시장 익스포저를 적극적으로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자산운용사는 올해 초 신흥시장 자산에 대해 강세 전망을 유지하며 비중확대 전략을 취해왔다.
일부는 이란 분쟁이 장기화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TSMC 등 반도체 기업으로의 대규모 자금 유입에 힘입어 상승해온 신흥국 지수의 장기 매도세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