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한인 입양인들 '기억 없는 고향'으로 내몰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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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성훈 기자I 2025.10.31 15:23:57

시민권 없는 입양인 최대 7.5만명…한인 2만명 추정
법적·제도적 허점으로 ‘성인 입양인’ 된 사례 많아
불법 체류자들과 휩쓸려 강제 추방될까 ''벌벌''
강제 추방후 고국서 고통받는 경우도 상당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1966년생 셜리 정은 한 돌 무렵 서울의 한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미국 가정에 입양됐다. 이후 텍사스에서 자라 학교와 취업, 결혼, 육아까지 평범한 미국인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2012년 사회보장카드 재발급 과정에서 자신이 미국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큰 충격과 혼란을 겪었다.

정씨처럼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수만명이 ‘시민권 미취득’으로 자신이 태어난 국가로 강제 추방될 위기에 놓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강경 이민정책을 시행하면서다.

한 미국 시민이 올해 2월 플로리다주 코코넛 크릭에 있는 자택에서 입양한 딸의 사진을 보고 있다. (사진=AFP)


30일(현지시간) BBC방송에 따르면 미국 내 한인을 비롯한 해외 입양인 가운데 시민권 없이 살아가는 인원이 최소 1만 8000명에서 최대 7만 5000명으로 추정된다. 한인 입양인만 2만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BBC는 “부모, 학교, 정부의 무관심 속에 시민권 취득을 이한 법적 절차가 완료되지 못한 채 ‘성인 입양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본인도 모르는 사이 무국적자가 되는 셈”이라고 짚었다.

법적 배경에는 ‘2000년 아동 시민권법’(Child Citizenship Act of 2000)이 있다. 이 법은 1983년 2월 이후 출생하고 미국에 합법적으로 입국한 입양인에게만 시민권을 자동 부여한다. 그 이전 입양인들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입양인 권익단체와 가족들이 수년간 ‘입양인 시민권법’ 입법을 추진했으나,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해 수많은 성인 입양인들이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미국 내 입양 가정과 변호사, 인권단체들은 “어릴 적 합법적으로 입국한 입양인들은 외국인 이민자가 아니다. 미국 가정의 정식 구성원으로 자란 미국 시민으로 대우받아야 할 사람들”이라며 “이들을 정체성 파괴와 추방 공포 속에 방치하는 건 인권 침해”라고 입을 모았다.

문제는 성인 입양인들이 미국인으로 한평생 살아왔음에도 시민권이 없어 자신이 태어난 나라로 쫓겨날 위험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이미 수십명이 추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트럼프 행정부가 250일 만에 불법 체류자 200만명을 추방하고, 이 중 40만명 이상을 강제 추방했다고 발표하면서 입양인들의 공포가 극대화하고 있다.

1970년대생 이란 출신 한 입양인은 다른 불법 체류자들과 단속에 ‘휩쓸릴’ 경우를 우려해 이란인들이 많은 지역 방문을 의도적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또 친구들과 앱을 공유해 항상 자신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입양인은 “그들(이민 단속당국)은 뒷이야기에는 관심이 없다. 합법적으로 이 곳(미국)에 있고, 그저 서류상 오류일 뿐이라는 사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결국 서류 한 장이 사실상 내 인생을 망친 것이다. 현재 나는 스스로를 무국적자라고 느끼고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입양인은 추방 이후 고향 국가에서도 언어·문화·시민권 부재로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고통을 겪는다. BBC는 “미국 입양 가정에서 자란 한 남성이 한국으로 추방된 뒤 극심한 고립감에 시달리다 2017년 삶을 포기한 사례도 있었다”며 “한인을 포함해 다양한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위기가 확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입양인 인권 변호사 에밀리 하우는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입양인들도 출생과 동시에 미국 시민이었던 부모, 형제·자매와 동등해야 한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2살때 미국인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고, 현재 미 시민권자인 부모가 2~4명인 40~60대”라며 “절대 이들은 불법 체류자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정치적 의지를 모아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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