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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원유 선물은 지난주에만 36% 폭등하며 1983년 선물 시장 출범 이후 최대 주간 상승폭을 기록했다. 8일 저녁 시장 개장 후 20% 추가 상승하며 배럴당 11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다.
사태는 지난달 28일 시작됐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직후 이란 해군 함장이 선박들에 호르무즈 해협 진입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는 것으로 보이는 녹음 파일이 업계에 퍼졌다. 유조선 통항은 사실상 멈췄고, 8일 기준 1000척 이상의 선박이 해협 앞에서 발이 묶였다. 9척의 선박에 대한 공격으로 선원 1명이 사망하면서 선주와 선원들은 통항을 포기했다.
나타샤 카네바 JP모건체이스 애널리스트는 이달 13일까지 해협이 봉쇄 상태를 유지하면 하루 400만 배럴 이상의 공급 차질이 발생하고, 이달 말에는 최대 900만 배럴(전 세계 수요의 약 10분의 1)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란의 라스라판 가스 단지 드론 공격 이후 카타르가 액화천연가스(LNG) 생산을 전면 중단하면서 전 세계 LNG 공급의 20%도 사라졌다. 가스 액화 설비는 재가동까지 수 주가 소요돼 해협이 열리더라도 즉각적인 공급 회복은 어렵다.
에너지 분야 권위자 다니엘 예르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글로벌 부회장은 “이것은 단연코 역사상 일일 원유 생산 기준 최대 규모의 공급 차질”이라며 “몇 주간 지속한다면 전 세계 경제 전반에 파장이 커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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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오일쇼크 공포가 현실화하는 배경에는 1·2차 오일쇼크의 뼈아픈 경험이 있다. 앞서 두 차례 모두 발단은 전쟁이었다. 1차 오일쇼크는 1973년 이집트·시리아가 이스라엘을 침공한 4차 중동전쟁에서 비롯됐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아랍 산유국들은 이스라엘을 지원한 미국·영국 등에 석유 수출을 전면 금지하고 감산을 단행했다. 배럴당 3달러였던 유가는 3개월 만에 12달러까지 4배 폭등했고, 세계 경제는 유례없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들었다.
2차 오일쇼크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이 도화선이 됐다. 혁명 당시 파업으로 하루 600만 배럴에 달하던 이란 석유 생산량은 200만 배럴로 급감했다. 생산량이 일부 회복되는 듯했지만 1980년 이라크가 이란을 침공하면서 유가는 다시 치솟았다. 배럴당 13달러대였던 유가가 1981년 39달러까지 올랐다. 2차 오일쇼크는 1981년까지 이어지며 세계 경제를 침체로 몰아넣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불거진 걸프전쟁도 에너지 충격을 안겼다. 단기간에 국제유가가 두 배 이상 급등했다. 그해 8월 배럴당 17달러였던 유가가 10월엔 41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번 위기는 과거보다 복잡하다. 미국이 에너지 수출국으로 전환했고, 재생에너지 확대로 원유 의존도는 낮아졌다. 그러나 LNG 의존도가 크게 높아진 유럽·아시아 경제의 새로운 취약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걸프만 석유의 약 80%를 수입하는 아시아 국가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얀마는 차량 연료 배급제를 도입했고, 태국은 일부 연료 수출을 중단했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냉각재·세정 가스로 쓰이는 헬륨 부족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호르무즈 봉쇄 영향을 줄이기 위해 러시아산 원유 제재를 일부 완화해 인도에 대체 공급원을 제공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대(對)러시아 압박 기조와 충돌하는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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