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엿새간 680조원 증발…“종교처럼 믿던 장기보유자도 판다”

이정훈 기자I 2026.02.04 17:08:57

15개월 만에 7만2000달러대 추락한 비트코인, 아직 7만6000달러대
작년 10월 레버리지 포지션 27조원 청산 후 매물폭탄 못 벗어난 상황
지정학적 불확실성 속 금과 같은 안전자산 역할 못한데 따른 실망 반영
노보그라츠 “종교에 가까운 믿음 가진 장기보유자들도 매도 시작해”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비트코인 하락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일주일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가상자산시장 시가총액은 거의 5000억달러 가까이 사라졌다. 작년 말 대규모 청산 매물 이후 매물폭탄 공세가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이 금과 같은 안전자산으로서의 역할을 못한데 대한 실망감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고, 굳은 신념을 가졌던 장기 보유자들도 매도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가상자산시장 전체 시가총액 추이(자료=코인게코)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가상자산 데이터업체인 코인게코(CoinGecko)에 따르면 전체 가상자산시장 시가총액은 지난달 29일 이후 이날까지 단 엿새 간 4676억달러(원화 약 679조3300억원) 감소했다.

이 기간 중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 2024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보다 친(親)가상자산 성향의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최저치로 떨어지기도 했다. 장중 7만2877달러로 1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던 비트코인은 일부 낙폭을 줄이긴 했지만 아직도 7만6000달러 수준에서 머물러 있다.

친가상자산 성향의 백악관과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확대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은 지난해 10월 초 사상 최고치로 치솟은 뒤 약 40% 급락했다. 이번 급락은 지난해 10월10일 레버리지 토큰 베팅에서 190억달러(원화 약 27조6000억원)가 청산된 이후 지속적으로 매물이 쏟아지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BTC마켓츠의 레이철 루카스 애널리스트는 “아시아 오전장의 심리는 조심스럽고 방어적”이라며 “분위기는 여전히 위험회피(risk-off)이지만, 강제 매도의 속도는 미국 장 마감 때보다 둔화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비트코인이 7만3000달러 아래를 내려 가면서 심리가 ‘극도의 공포’ 구간으로 밀려났다”고 덧붙였다.

이번 하락은 글로벌 시장 전반이 큰 변동성을 겪은 한 주와 맞물려 나타났다. 금과 은도 큰 폭의 등락을 보였다. 귀금속은 최근 하락 이후 화요일 매수세가 유입됐지만, 가상자산만은 지지선에서의 저가 매수를 끌어내지 못했다.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면서 투자자들이 안전자산을 찾는 가운데, 비트코인과 미국 주식은 함께 하락했다.

이 같은 비트코인 급락은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면에서 안전피난처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역베팅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마이클 버리는 이번 주 비트코인이 귀금속과 같은 헤지 수단으로 자리 잡는 데 실패했고, 결국 순수한 투기성 자산으로 드러났다고 경고했다.

실제 코인글래스(CoinGlass)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4시간 동안 무기한 선물(perpetual futures) 시장에서 강세·약세 포지션을 합쳐 7억달러가 넘는 베팅이 청산됐다. 지난달 29일 이후 누적 청산 규모는 66억7000만달러를 넘어섰다. 미국 상장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로의 자금 흐름도 요동치고 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일엔 약 5억6200만달러의 순유입이 있었지만, 다음날인 3일에는 2억7200만달러가 다시 순유출됐다.

대표적인 가상자산 투자 및 금융서비스 업체인 갤럭시 디지털(Galaxy Digital LP)의 마이클 노보그라츠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실적 발표 직후 컨퍼런스콜에서 “역사적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비트코인을 들고 간다’는 거의 종교에 가까운 믿음이 엄청나게 강했는데, 어느 순간 그 바이러스, 혹은 열병이 꺾이면서 매도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기 보유자들이 비트코인을 매도한다는 논의는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당시 갤럭시 디지털은 ‘사토시 시대(Satoshi-era)’ 투자자 한 명을 위해 8만개가 넘는 비트코인을 약 90억달러 규모로 매각하도록 중개했다고 밝혔다. 회사 측은 이 거래가 매도자의 ‘상속 계획’ 전략의 일환이었으며, 명목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 비트코인 거래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이는 초기 비트코인 커뮤니티가 오랫동안 변동성 속에서도 비트코인을 놓지 않는 ‘호들(HODL·장기 보유 전략)’을 강조해 왔다는 점에서, 초기 커뮤니티가 믿음을 잃은 것 아니냐는 논쟁에 불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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