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증상의 배경에는 희귀질환인 파브리병(Fabry disease)이 숨어 있을 수 있다. 4월 ‘세계 파브리병 인식의 달’을 맞아 재조명되고 있는 파브리병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한 번 진행되면 신부전·부정맥·심근경색·뇌졸중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진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천힘찬종합병원 순환기내과 김민식 과장은 “파브리병은 단순히 세포 내 노폐물이 쌓이는 병을 넘어, 전신 혈관과 장기를 서서히 파괴하는 시한폭탄과 같다”라며 “하지만 손발 통증이나 발한 이상처럼 흔한 증상으로 시작되는 탓에, 장기 손상이 상당 부분 진행될 때까지 진단받지 못하고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 효소 결핍이 부른 전신 손상…성장통 오해가 진단 늦춰
파브리병은 알파-갈락토시다제 A 효소 결핍으로 당지질이 쌓여 전신 장기를 손상시키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초기 증상은 손발 통증과 땀 감소로 성장통 등으로 오인되기 쉽다. 이 효소에 이상이 생기면 당지질(GL-3 또는 Gb-3)이 제대로 분해되지 못하고 혈관 내피세포와 여러 조직에 점차 쌓인다.
그 결과 혈관 벽과 조직 기능이 손상되고, 시간이 흐를수록 신장·심장·신경계 등 전신 장기에 비가역적인 손상이 진행될 수 있다. 질병관리청 희귀질환 정보에 따르면, 파브리병은 인구 11만7,000명당 한 명 꼴로 발생하며 주로 남성에게서 나타난다.
파브리병의 증상은 대개 아동기나 청소년기에 시작된다. 대표적인 초기 증상은 손발 끝이 타는 듯하거나 찌릿찌릿한 사지 통증이다. 이 통증은 운동, 더위, 피로, 스트레스, 기후 변화 등에 의해 악화될 수 있으며 성장통이나 피로 누적으로 오인되기 쉽다. 실제로 파브리병은 유년기부터 증상이 있었음에도 오진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다가, 성인기에 장기 손상이 진행된 뒤 진단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다른 초기 신호는 무한증 또는 저한증이다. 땀 배출량의 감소로 체온 조절이 어려워 더위에 취약해지고, 운동이나 고온 환경에서 쉽게 지치거나 탈진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피부에 검붉은 반점 형태로 나타나는 혈관각화종, 반복적인 복통과 위장관 증상, 청각 이상, 각막 변화 등도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증상과 함께, 가족 중 비교적 이른 나이에 신장질환·심장질환·뇌졸중을 겪은 사람이 있다면 파브리병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환자마다 증상이 다양하고 일반적인 질환과 구분이 어려워 조기에 파브리병을 인지하기가 쉽지 않다.
◇ 치료 시기 놓치면 신장·심장 손상 ... 초기 진단이 예후 좌우
문제는 병이 진행될수록 치명적인 장기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단백뇨, 신장 기능 저하를 거쳐 신부전에 이를 수 있고, 심비대· 부정맥· 심부전·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심뇌혈관질환도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여러 환자가 신장 이상이나 심비대로 진료를 받다가 뒤늦게 파브리병을 진단받는다. 특히 남성 환자의 경우 증상이 더 빠르고 심하게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
가족 선별 검사도 중요하다. 파브리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는 X염색체 상에 위치하므로, 남성 환자의 딸은 모두 파브리병 유전자를 물려받게 되며, 여성 환자의 자녀는 성별과 상관없이 50%의 확률로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따라서 가족 내에 환자가 1명이라도 있다면 증상이 없더라도 가족 선별 검사를 통해 잠재적 환자를 조기에 찾아내야 한다.
치료는 부족한 효소를 보충하는 효소대체요법과 통증 조절, 신장·심장· 뇌혈관 합병증 관리 등 대증요법을 함께 시행한다. 대증요법은 진통제·항혈소판제·항응고제 투여 등 증상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근본적인 치료법이 아니기 때문에 효소대체요법을 1차 치료 선택지로 고려한다. 효소대체요법을 소아· 청소년기 이전에 시작하면 예후가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힘찬종합병원 순환기내과 김민식 과장은 “파브리병은 진단만 제때 이뤄지면 치료와 관리가 가능한 질환이지만, 신장 섬유화나 심근 손상이 상당히 진행된 뒤에는 치료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라며 “원인 모를 단백뇨와 손발 통증이 지속되거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심비대, 부정맥, 뇌졸중이 발생한 경우라면 파브리병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