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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역전의 배경에는 AI 인프라의 급격한 확장이 있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불러와 연산해야 하기 때문에 GPU의 연산 능력만 높여서는 전체 시스템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연산 장치가 아무리 빨라도 필요한 데이터를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병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GPU와 메모리 사이에서 대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는 HBM은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았고, AI 서버에 필요한 고용량 D램과 데이터 저장을 담당하는 기업용 SSD의 중요성이 함께 높아지고 있다.
벤 리 가트너 디렉터 애널리스트는 “AI 인프라가 확대되면서 반도체 산업 내 수요 구성도 재편되고 있다”며 “반도체 가치가 창출되는 영역과 산업 전반의 수요 변화 양상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가트너는 전체 반도체 매출에서 AI 데이터센터 생태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올해 36.5%에서 2030년 53%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메모리 초호황이 과거와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에는 PC, 스마트폰 판매 증가가 메모리 수요를 끌어올리는 경기 순환적 성격이 강했다. 반면 지금은 AI 인프라 투자가 확대되면서 서버 한 대에 들어가는 메모리 용량뿐 아니라 HBM과 같은 고부가 제품의 비중까지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 AI 연산 성능을 끌어올릴수록 더 빠르고 더 많은 메모리가 필요해지는 새로운 산업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메모리 시장은 공급 제약에 따른 가파른 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생성형 AI와 AI 에이전트 확산으로 HBM과 고용량 서버 D램, 기업용 SSD 수요가 동시에 늘어난 가운데 메모리 업체들은 한정된 생산능력을 AI용 고부가 제품에 우선 배정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범용 D램과 낸드 공급까지 빠듯해지면서 가격 상승세가 메모리 시장 전반으로 확산됐다.
반도체공학회장을 지낸 이규복 인하대 특임교수는 메모리와 비메모리 역전 현상에 대해 “통상 반도체 산업 구조는 비메모리가 70% 메모리가 30%였는데, 최근 메모리 품귀 때문에 단가가 크게 올라간 영향”이라며 “가격 상승과 AI가 만든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전날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발표에 따르면 서버 D램 계약가격은 지난해 하반기 누적 64% 오른 데 이어 올해 약 270% 추가 상승할 전망이다. 기업용 SSD 가격 역시 지난해 하반기 약 35% 상승한 데 이어 올해 누적으로 235% 급등할 것으로 예상됐다. HBM 계약 가격 역시 2027년에도 70~140%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메모리가 AI 시대의 핵심 자원으로 부상하면서 한국 메모리 업체들의 위상도 함께 높아질 전망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글로벌 D램 매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점유율은 65%에 달한다. HBM에서는 지배력이 더욱 강하다. 올해 1분기 매출 기준 SK하이닉스가 58%, 삼성전자가 21%를 차지해 양사의 합산 점유율은 79%에 이른다.
메모리 중심의 성장세는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가트너는 내년 메모리 매출이 1조755억달러로 비메모리보다 2111억달러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 교수는 “팹을 짓는다고 해도 당장 생산능력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메모리 품귀현상과 메모리 시장 성장은 짧게봐도 2028년 상반기까지는 계속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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