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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자리서 北이야기했다고"…中서 간첩 된 일본인의 고백

정다슬 기자I 2024.10.31 15:44:12

반간첩법으로 중국서 6년 복역한 스즈키 씨
이유도 모른채 7개월간 빛도 못본채 24시간 감시
재판 과정도 비공개…항소도 기각돼
日 반간첩법 제정이래 최소 17명 체포…1명 복역중 사망
기소당하면 석방 어려워…신속한 외교적 해법이 필요

by.챗GPT
[이데일리 정다슬 기자] 2014년 중국이 반(反)간첩법을 처음 시행한 이래 최소 17명의 일본인이 법에 따라 처벌됐다. 일본으로 돌아온 이들은 대다수 입을 닫았지만, 2022년 10월 귀국한 스즈키 에이지(67)는 그해 12월 NHK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구속된 경위를 소상히 밝혔다. 일·중 교류사업을 하던 그는 반간첩법 유죄 판결을 받아 6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스즈키 씨가 구속당한 것은 2016년 7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한 뒤, 일본으로 귀국하던 길이었다. 베이징국제공항에 도착하자 5~6명의 남성이 자신을 덮쳐 하얀색 밴으로 밀어 넣어졌다.

이후 스즈키 씨는 휴대전화와 손목시계, 바지 벨트를 빼앗기고 눈이 가려진 채 1시간을 달려 어떤 방에 갇혔다. 방에는 작은 책상과 침대, 낡은 소파가 있었고 창문에는 검은색 두꺼운 커튼이 달려있어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었다. 네 귀퉁이에는 감시카메라가 달려있었고 방에 달린 화장실에는 문이 없었다. 7개월간 24시간 내내 남자 2명씩 교대로 방에 들어와 스즈키 씨가 잠을 자는 순간도, 용변을 보는 상황도 지켜봤다. 잘 때도 불이 켜져 있는 상태였다.

일상은 조사와 식사, 샤워, 용변뿐이었다. TV나 책은 커녕, 종이나 펜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2017년 7월 기소될 때까지 7개월간 감시 생활 속에서 스즈키 씨가 햇빛을 본 것은 15분뿐으로 스즈키 씨의 간절한 바람으로 허용됐다고 한다. 창문에서 떨어진 의자에 앉아 햇빛을 보며 스즈키 씨는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이후 진행된 재판은 모두 비공개로, 증인 신청도 모두 거부됐다. 스즈키 씨는 2019년 5월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아 항소했지만 2020년 11월 기각됐다. 이후 베이징에 있는 형무소에 수용돼 그간 구속됐던 4년간을 제외하고 2년 가까이 추가 복역했다.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스즈키 씨는 자신이 왜 잡혔는지도 알게 됐다고 한다.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중국 정부 관계자와 식사를 할 때,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를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스즈키 씨는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의 사위였던 장성택이 처형당했다고 한국 정부가 발표해 (중국 정부 인사에) ‘장성택은 왜 처형당했냐’고 물어보니 그 사람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는 “이게 왜 위법한 정보수집활동인가, 나는 이해도 되지 않고 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판결문에는 “스즈키 에이지는 일중 교류인사라는 신분을 이용해 중국 내외에서 사람들과 접촉하며 면담 등의 방법으로 중국의 대일정책 등을 포함한 외교정책, 고위층 인사 동양, 댜위다오(센카쿠 열도)와 방공식별권에 관련한 정책조치, 북중 관계 등의 정보를 수집해왔으며, 입수한 정보를 일부 사람에게 제공해왔다”며 “스즈키 에이지는 간첩 범죄행위로 중국의 국가안전에 위해를 초래했다”고 적혀 있었다.

출처= CISTEC, 외무성, 각종 보도자료를 동양경제가 정리한 자료를 다시 재구성
일본 언론이 과거 사례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중국에서 반간첩법으로 한번 기소가 이뤄질 경우, 조기 석방은 매우 어렵다. 중국은 원칙적으로 구속 후 1개월 이내, 최장 6개월 이내에 기소 여부를 판단한다.

지금까지 중국에 간첩법 혐의로 기소된 것으로 알려진 이 중 11명은 귀국했는데 6명은 형기를 만료했고 나머지 5명은 기소 전 석방됐다. 나머지 5명은 여전히 구속된 상태이며 징역 12년형을 받은 70대 일본인 한 명은 복역 중 병으로 사망했다.

이중 조기 석방된 사례는 2019년 9월 중국 정부계 싱크탱크 ‘중국사회과학원’의 초청으로 중국에 간 이와타니 노부 홋카이도 대학교수가 베이징 호텔에서 체포돼 두달여만에 석방된 건이다. 당시 일본 언론과 각 학회, 연구기관이 나선데다 아베 신조 전 총리도 강하게 중국정부에 촉구했다. 2020년 시진핑 국가주석의 일본 방문을 앞뒀다는 시기적 배경도 호재로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당시 석방 역시 이와타니 교수가 혐의를 인정하고 시말서를 제출하는 등 충분한 반성의 뜻을 보여 ‘보석’이라는 형태로 이뤄졌다.

일본언론들은 반간첩법의 무서운 점은 도대체 무엇이 위법인지 불확실한 것이라고 말한다. 스즈키 씨의 사례처럼 재판은 비공개로 이뤄지는 만큼, 반론을 제시하는 것 역시 어렵다. 일본에서는 2023년 3월 반간첩혐의로 아스텔라스제약 사원의 일본의 남성이 체포돼 현재 기소당한 상태이지만, 여전히 중국측은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말할 뿐, 구체적인 혐의 내용은 밝히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2023년 7월 반간첩법은 개정이 이뤄져 ‘국가의 안전과 이익’에 관한 정보의 교환을 모두 스파이 행위로 인정한다. 국가안보기관의 조사·권한을 확대해 경찰신분증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스마트폰이나 PC를 볼 수 있게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일부 일본 기업들은 사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중국출장을 제한하고 있는 중”이라며 “리창 총리가 중국이 아무리 개방된 시장이라며 대중투자를 호소해도 이 상태로는 설득력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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