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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암 경험자의 정서적 지지를 위한 ‘고잉 온 콘서트’, 2021년에는 하트ㆍ하트 재단 주최로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하트 투 하트 콘서트’에 협연자로 참여했었다. 병마와 싸우는 환우들과 장애가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뜻깊은 연주에 자주 참여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쁜 와중에 드는 생각은, 과연 자칭타칭 선진국 대한민국은 장애인에 대한 처우가 선진국답냐는 것이었다.
필자가 독일에서 유학할 때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항상 도보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학생 신분은 독일 대부분 지역에서 대중교통이 무료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내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와중에, 휠체어를 탄 한 장애인 승객이 버스에 오르려고 했다. 버스 기사가 버스 시동을 끄고 내리더니, 손수 그 승객의 휠체어를 조작해 탑승을 돕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몇 정거장 후 승객이 하차할 때도 기사는 직접 그의 하차를 도왔다. 탑승과 하차 시에 수 분의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다른 승객들은 불편한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지난 수 년 내지 수십 년간 장애인의 이동성과 편의성에 대해 점점 더 개선해가는 노력을 보였다. 필자가 어렸을 때는 거의 모든 버스가 계단을 올라야 탑승할 수 있는 구조였는데, 계단이 없는 ‘저상’식 버스가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모든 지하철역은 엘리베이터가 최소 한 대씩은 설치되어있고, 긴 계단이 있는 경우에는 장애인용 승강기가 위치한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런 구조적인 개선이 ‘하드웨어’적이라면, 과연 ‘소프트웨어’라고 여길 수 있는 시민의식의 개선은 어떨까?
장애인들이 시위성으로 출근길 지하철을 점거하며 통행을 방해하는 뉴스는 우리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대부분 “출근길에 민폐다”, “다른 곳에서 시위하지 왜 피해를 끼치느냐”라는 의견이지만, 일각에서는 “오죽하면”이라는 안타까운 시선 또한 존재한다.
물론 수십에서 수백만 명이 이용하는 중요한 대중교통인 지하철 역을 점거하며, 특히 극도로 혼잡하고 누구나 다 촉박한 출근 시간에 직장인들의 시간을 뺏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직장 상사의 꾸중은 둘째치고, 만약 정말 중요한 클라이언트 미팅이 있는데 그 시위로 인해 참석을 못 해서 그 거래가 엎어진다면? 그는 어디에 하소연할 수 있을 것인가?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책임져줄 것인가?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장애ㆍ비장애의 간극이 이렇게까지 깊게 패여서 모든 이에게 피해를 끼치게 한 근본적인 이유를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이란 선천적이 아니더라도 후천적으로도 얼마든지 장애를 가질 수 있다. 비난부터 하기 전에, 장애인들의—신체적 장애든, 발달장애든—고충을 먼저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선진국’ 대한민국의 시민다운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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