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총재 "韓 산업정책, 정부 주도에서 민간 주도로 전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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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은 기자I 2026.03.05 16:02:57

이창용 한은 총재, IMF ''아시아 2050'' 컨퍼런스 기조연설
"아시아, 세계 경제성장 엔진 지위 유지 불확실"
탈세계화·선진국 제조업 자립·기술발전 등 도전 요소
"정부 주도 산업정책 좀비기업 키워…구조개혁도 병행 필요"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5일 지난 반세기 아시아 고성장을 이끌었던 정부 주도의 수출 산업화 모델이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했다면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이 산업 정책을 민간 주도로 전환하고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등 여건 변화에 맞춰 대응 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했다.

산업정책 정부 아닌 민간이 주도해야

이 총재는 이날 태국 방콕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 주최 ‘아시아 2050’(Asia in 2050) 컨퍼런스 기조연설을 통해 “과거 IMF 아태국장 시절에는 아시아의 성공이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에 주저 없이 ‘그렇다’고 답했지만, 지금은 훨씬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탈세계화의 가속화 △선진국의 산업정책 복귀 △자동화·인공지능(AI) 등 기술 발전에 따른 제조업 구조 변화 등이 아시아 경제에 역풍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총재는 한국을 핵심 사례로 들어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지난 반세기 세계화와 정부 주도 수출지향적 성장 전략의 혜택을 가장 극적으로 누린 나라”라면서도, 바로 그 성공이 지금의 취약성으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은 제조업 구조 전환과 세계화 재편이라는 도전에 크게 노출된 좋은 예”라고 했다.

한국의 제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기준 26.7%로, OECD 평균(13.4%)의 두 배에 달하며 제조업 강국으로 꼽히는 독일(18%)과 일본(20.6%)도 크게 웃돈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각각 약 20%에 달해 공급망 재편과 미·중 갈등의 직격탄을 맞을 위험이 크다.

바뀐 환경에 맞춰 산업정책에서 정부의 역할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총재의 생각이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동아시아 국가에서 정부 주도의 산업정책은 선진 제조업을 모방하고 기술을 습득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변했다”며 “기술 최전선에 가까워진 국가일수록 더 이상 모방할 선진 모델이 없고 정부가 특정 산업의 상업적 성공을 보장하기도 어렵다”고 짚었다.

이어 정부 주도 산업정책을 민간 주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도 냈다. 정부가 직접 기업을 선별해 지원하면, 중간에 성과가 나빠져도 정치적 부담 때문에 지원을 끊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3년 연속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좀비기업의 비율이 2024년 말 기준 역대 최고치인 17%에 달했으며, 1년 내 정상화되는 비율은 8개 중 1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1990년대 일본 버블 붕괴 이후나 현재 중국 국영기업 문제 역시 정부 주도 산업정책의 부작용이 나타난 결과라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정부가 직접 기업을 선택하지 않고 민간 금융기관을 통해 간접 지원하는 ‘온렌딩(on-lending)’ 방식으로의 전환을 제안했다. 그는 “지원받는 기업은 정부 지원 사실을 모르게 돼, 성과가 나쁘면 민간 금융기관이 자금을 회수할 수 있어 정책금융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독일 부흥금융기구(KfW)와 유럽투자은행(EIB),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산업정책과 구조개혁 상호보완적으로 추진해야

아울러 이 총재는 산업정책과 구조개혁을 상호보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거에는 특정 산업을 먼저 키우는 ‘수직적 처방(산업정책)’이 유효했지만, 이제는 경제 전반의 마찰을 줄이는 ‘수평적 처방(구조개혁)’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고령화·저출산 문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그는 “AI 같은 전략 산업 육성이 미래 성장의 핵심이지만, 노동시장 유연화·연금 개혁·여성과 고령층 경제활동 참여 확대 등 고령화 해결을 위한 구조개혁 투자도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또 한계기업의 신속한 시장 퇴출이라는 구조개혁이 뒷받침돼야 확보된 자원을 새로운 산업정책 재원으로 돌릴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 총재는 산업구조 전환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책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경제의 산업 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나뉘고, 이해관계 조정을 위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면서 “이 조율 과정이 순조롭게 이뤄지려면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의 안정이 전제돼야 하며, 그것이 바로 중앙은행의 책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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