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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도 춘추전국시대…승자는 누구

김형욱 기자I 2025.02.19 20:23:44

정치혼란 속 11차 전기본 늑장 통과
무탄소전원 원전-신재생 ''극적 타협''
4.6GW 부족분은 ''공란''으로 남겨져
다음정부 주도 12차 전기본 때 결정
무탄소 전원간 동일조건 경쟁 ''주목''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을 계기로 탄핵 정국에 빠진 정치권이 바야흐로 춘추전국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유력 후보가 존재하는 야권에서도 잠룡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고, 조기 대선을 말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된 여권에서도 물밑 행보가 분주하다.

에너지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어느 진영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정책의 방향성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원자력계는 2017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과정에서 ‘탈원전 충격’을 경험한 바 있다. 2022년 ‘원전 강국’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출범했으나 거야의 견제와 이후 이어진 탄핵 정국으로 사실상 ‘3년 천하’가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2021년 12월 29일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에서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을 담은 원자력 공약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원자력과 재생에너지, 수소·암모니아, 심지어 석유·가스까지 모든 에너지원의 목표는 하나다. 국민에게 안정적인 에너지를 공급하면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방법론을 두고 전 세계가 아직 하나의 방향을 정하진 못했다. 여러 에너지원이 ‘내가 미래’라며 백가쟁명 중이다.

◇11차 전기본 사실상 확정…원전-신재생 ‘타협’

미래 무탄소 에너지원의 두 유력 후보인 원자력과 재생에너지(태양광·풍력 등)는 정국 혼란 속 일단 타협을 택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19일 전체회의에서 계엄·탄핵 정국 여파로 미뤄뒀던 산업통상자원부의 15개년(2024~2038년) 법정 계획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의 보고를 받으며, 사실상 이를 확정했다.

원자력계로선 불만과 안도가 공존할 만한 결과다. 대형 원전 3기 신설 계획 중 1기가 줄어든 건 아쉽다. 그러나 앞서 탈원전 정책을 펼쳤던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정국 속에서 원전 2기 신설에 더해 차세대 원전인 소형 모듈 원자로(SMR) 4개 묶음 신설 계획을 확정한 건 성과로도 볼 수 있다.

지난해 국내 전력 공급의 32.5%를 도맡으며 2006년 이후 18년 만에 최대 에너지원으로 복귀한 원전은 11차 전기본 계획에 따라 13년 후인 2038년에도 35.2%의 지분을 확보하며 최대 에너지원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됐다.

11차 전기본 발전량 및 발전비중. (표=산업통상자원부)
신·재생에너지로서도 나쁘지 않은 결과다. 전통 강호 원전의 선방 속 무탄소 에너지(발전)원 ‘독식’은 어려워졌지만, 2023년 기준 9.6%에 불과한 비중을 2038년까지 29.2%로 3배 늘린다는 목표를 확정했다. 미미하게나마 막판에 설비 확충 계획을 더 늘리기도 했다.

석탄·가스(열병합)도 무탄소 에너지원으로의 전환 시간을 벌었다. 그 비중은 석탄(26.8→10.1%)과 가스(26.8%→10.6%) 모두 드라마틱하게 줄어들 예정이지만, 청정 수소·암모니아를 섞어 쓰는 형태로 그 생명력을 연장할 수 있게 됐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까지 청정 수소·암모니아 발전 비중을 6.2%까지 늘리기로 했다. 대부분은 석탄·가스에 일정 비중을 섞는 혼소 발전 개념이다.

때마침 원전업계의 50여년 묵은 과제인 사용 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도 국회의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 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신·재생 발전량 확대의 기반이 될 해상풍력 보급 특별법도 이와 함께 묶여 이르면 이달 중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기대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대형 원전은 2기를 한 세트로 짓는 만큼 3기에서 2기에서 줄인 건 오히려 바람직하다”며 “신·재생 보급을 약간 늘린 것도 실현 가능 여부를 떠나 글로벌 트렌드에 부합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미래 주류 무탄소 에너지원이 되려는 에너지원 간 진검 승부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미 늦어진 11차 전기본에선 타협이 이뤄졌지만, 이 법정계획의 실제 수명은 2년도 안 된다. 전기본은 2년마다 수립하므로 곧 12차 전기본 수립에 착수하게 된다. 조기 대선을 전제로 이를 주도하는 건 차기 정부의 몫이다. 조기 대선의 승자는 정치권력을 쥐는 동시에 미래 에너지원을 결정하는 책무도 부여된다.

◇부족분은 ‘공란’으로…이제부터가 진검 승부

무대는 마련됐다. 정부와 국회의 논의 과정에서 원전 1기 건설 계획이 취소됐지만, 그 자리를 다른 에너지원으로 메우는 대신 사실상 ‘공란’으로 비워뒀다. 11차 전기본은 2038년에 필요할 157.8기가와트(GW)의 발전설비에서 부족한 10.3GW를 메우는 과정에서 4.6GW의 에너지원을 정하지 않았다. 12차 전기본 때 정하도록 유보(3.1GW)하거나, 무탄소 에너지원끼리의 경쟁(1.5GW)의 몫으로 남겨뒀다.

에너지업계가 특히 주목하는 건 2035~2036년 시행으로 잡아둔 1.5GW 규모의 무탄소 경쟁이다. 정부(전력거래소)가 원자력, 재생, 수소 등 모든 무탄소 전원이 동일한 조건 아래 참여할 수 있는 입찰시장을 열 테니, 누가 그때까지 더 좋은 무탄소 전력을 공급할 수 있을지 경쟁해보라는 것이다.

현실화한다면 국내 최초의 이종 에너지원간 입찰 경쟁이다. 70여년 간 줄곧 에너지 공급을 주도해 온 정부는 석탄이면 석탄, 가스면 가스처럼 같은 에너지원끼리 입찰 경쟁을 시켰지만, 이종 에너지원 간 입찰 경쟁은 없었다.

한국남동발전이 운영 중인 제주 탐라해상풍력발전단지 전경. (사진=남동발전)
누가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당장은 원가가 신재생 대비 3분의 1 혹은 4분의 1 수준인 원전의 우위를 점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개별 원전 사업자가 정부의 도움 없이 주민 수용성 확보부터 대규모·장거리 전력망 연결과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부담, 약속된 사업 지연에 따른 패널티를 오롯이 부담해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재생에너지도 주민 수용성이나 전력망 연계, 사후처리 부담은 있지만 그 정도는 훨씬 낮다.

‘잠룡’ 격인 수소·암모니아가 급부상하거나, 시대적 소명을 다한 줄 알았던 석탄·가스가 배출탄소 포집 후 활용·저장(CCUS) 등 탈탄소 신기술을 앞세워 재부상할 수도 있다. 원전과 신재생은 무탄소 전원의 대표 주자로 꼽히지만, 전력 소비량에 맞춰 공급량을 조절하기 어려운 경직성 전원이란 치명적 단점도 있다. 전기는 저장이 어려운 에너지원 특성상 수급량 조절 능력도 중요한 덕목이다.

11차 전기본 실무안 수립을 주도했던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무탄소 경쟁은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갈등을 무탄소 전원끼리의 경쟁 매커니즘으로 풀어보자는 것”이라며 “11차 전기본에서 12차 전기본 때 결정하도록 유보해 둔 3.1GW도 무탄소 경쟁으로 충당하기로 못 박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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