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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는 25일 오후 2시 전원위원회를 열고 약 5시간의 회의 끝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희롱 등 직권조사 결과보고’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이는 인권위가 직권조사를 하기로 결정한 지 180일 만에 내려진 결과다.
인권위는 “박 전 시장이 업무와 관련해 피해자에게 행한 성적 언동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른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서울시 등 관계기관에 피해자 보호 및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 권고 등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해 7월 30일 직권조사 실시를 결정한 후 서울시청 시장실 및 비서실 현장조사를 비롯해 피해자에 대한 면담조사(2회)와 서울시 전·현직 직원 및 지인에 대한 참고인 조사(총 51명), 서울시·경찰·검찰·청와대·여성가족부가 제출한 자료 분석, 피해자 휴대전화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감정 등을 토대로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특히 다각도의 조사를 통해 박 시장이 늦은 밤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메시지와 사진과 이모티콘을 보내고, 집무실에서 네일아트한 손톱과 손을 만졌다는 피해자의 주장은 사실로 인정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행위는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성적 언동이라는 것이다.
다만 피해자의 주장 외에 행위 발생 당시 이를 들었다는 참고인의 진술이 없거나 휴대전화 메시지 등 입증 자료가 없는 사안에 대해선 사실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인권위는 “피조사자(박 전 시장)의 진술을 청취하기 어렵고 방어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반적 성희롱 사건보다 사실 관계를 좀 더 엄격하게 인정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시장 측근의 성희롱 묵인·방조 혐의에 대해선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고 봤다. 인권위는 “전보와 관련해 피해자가 비서실 근무 초기부터 비서실 업무가 힘들다며 전보 요청을 한 사실 및 상급자들이 잔류를 권유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면서도 “동료 및 상급자들이 피해자의 전보 요청을 박 시장의 성희롱 때문이라고 인지했다는 정황은 파악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서울시의 비서 운용 관행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는 시장의 일정 관리 등 보좌 업무 외에도 시장의 샤워 전·후 속옷 관리나 약 복용 챙기기, 혈압 재기 등 사적영역에 대한 업무도 수행했는데 이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도 비서실 직원에 의한 피해자 성폭력 사건 이후 서울시의 피해자 보호조치가 미흡했다고 판단했다.
한편 박 전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며 고소장을 접수한 피해자 측은 지난해 7월 인권위에 직권조사를 요청한 바 있다. 이들은 직권조사를 요청하면서 박 전 시장의 성희롱 및 강제추행, 서울시 및 관계자들의 방조, 미흡한 피해구제절차, 고소사실 누설 경위, 성차별적 직원 채용 및 성차별적 업무 강요 등을 조사해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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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들은 박 전 시장 사건과 관련된 수사를 진행하면서 성추행 및 방조 혐의에 대해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했다. 박 전 시장이 사망했고, 증거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앞서 경찰은 지난해 말 성추행 피소 건은 당사자 사망으로 인한 ‘공소권 없음’으로, 박 전 시장 측근의 성추행 의혹 방조 의혹은 박 전 시장 휴대전화 포렌식을 위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이 발부해주지 않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이유로 ‘무혐의’로 결론을 냈다.
또한 서울북부지검은 박 전 시장의 사망 경위 및 피소사실 유출 의혹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박 전 시장이 성추행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정황을 발표하긴 했지만, 그의 범죄 유무를 판단하진 않았다.
다만 지난 14일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의 1심 선고에서 법원이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판시하면서 박 전 시장의 혐의를 사실상 인정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