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대관 규모 ‘사상 최대’
23일 미국 상원 로비 데이터베이스, 미국 로비 정보 제공 비영리단체 오픈시크릿 등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지난해 미국 대관 자금으로 역대 최대인 698만달러(약 100억3000만원)를 지출했다. 삼성그룹 대관 자금은 삼성전자(005930) 북미법인, 삼성 반도체, 삼성SDI(006400), 이매진 등을 합산한 규모다. 삼성그룹의 로비액은 2021년 372만달러, 2022년 579만달러, 2023년 630만달러 등으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특히 엔비디아, 마이크론, 브로드컴, 텍사스인스트루먼츠 등 직간접적으로 경쟁하는 미국 반도체 회사들보다 로비 규모가 훨씬 컸다. 대만 TSMC의 로비 액수 역시 삼성전자보다 적었다. 삼성그룹이 그만큼 미국 동향에 어느 때보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뜻이다. 지난해 삼성그룹의 로비는 반도체법, 통신정책, 공급망, 인공지능(AI), 지식재산권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울렀다.
|
SK하이닉스(000660)를 통해 반도체 사업을 하는 SK그룹은 지난해 559억달러를 집행했다. 삼성그룹에 이은 2위다. SK그룹의 로비는 SK하이닉스 아메리카와 함께 지난해 초 신설한 북미 대관 컨트롤타워인 SK아메리카스까지 포함한 것이다. SK그룹의 상원 로비 활동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미국 정부의 반도체 수출 통제, 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이다.
재계 한 인사는 “미국 행정부가 트럼프 2기 들어서도 적극적인 산업정책, 특히 반도체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만큼 K반도체의 로비 액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한국 업체들이 중국에 반도체 생산 공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국 정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측면 역시 있다.
◇“정부도 워싱턴서 기업 도와야”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28만달러를 썼다. 현대차(005380)와 기아(000270), 현대제철(004020), 슈퍼넬,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대관을 합친 금액이다. 현대차그룹의 로비액은 2021년 291만달러, 2022년 336만달러, 2023년 323만달러 등으로 최근 몇 년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LG전자(066570), LG에너지솔루션(373220) 등을 포함한 LG그룹은 지난해 114만달러를 집행했다.
유독 눈에 띄었던 곳은 한화그룹이다. 지난해 391만달러를 지출해 현대차그룹을 제쳤다. 2021년 64만달러, 2022년 90만달러, 2023년 158만달러로 최근 지출 증가 속도가 국내 그룹 중 가장 빠르다. 한화그룹은 미국에서 태양광 공장을 운영하고 있고, 지난해 미국 조선업체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가동하고 있다. 태양광 패널 관세를 비롯해 조선, 국방, IRA 등 로비해야 할 분야가 많다는 평가다.
주요 그룹들의 대관 규모는 트럼프 2기 행정부 내내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가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을 피하고자 오히려 미국 현지 투자를 늘리려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그만큼 미국 정부와 의회를 중심으로 한 정보전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에서는 한국 정부의 외교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기업들만 홀로 뛰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워싱턴에서 기업들을 적극 도와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