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은 본청 639호 근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실에서 면담을 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음료수 박스 같은 선물을 들고 예결특위 관련 사무실들을 찾기도 했다. 이날 국회에 온 공무원들은 미래창조과학부·방송통신위원회·원자력안전위원회(이상 국회 미방위 소관)와 국방부·병무청·방위사업청(이상 국방위 소관), 여성가족부(여가위 소관) 등의 소속이다.
국회 예결특위 한 관계자는 “결국 자기 부처의 예산이 한푼이라도 깎이지 않도록 읍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국회의원을 통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어필해야 하는지 등을 두고 각종 정보전이 펼쳐진다고 한다. ‘쪽지예산’ ‘카톡예산’ 등의 조어도 그렇게 생겨났다. 이제부터 예산전쟁 ‘본게임’이다.
◇예산정국 ‘하이라이트’ 예산소위에 국회 북새통
이날 예산소위는 오전 11시 시작됐다. 예결위원장인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은 개회와 동시에 쪽지예산 근절을 천명했다.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소위가 시작되면서 민원성 문자들이 막 들어옵니다. 이게 100건 가까이 내용이 들어오는데 한두개 읽고난 뒤 의원들이 다 같은 내용이니 지우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정말로 읽어봐야 할 문자도 섞여서 지워지기도 합니다.” 그는 “집단 민원성 문자는 자제해달라”고도 했다.
첫날이니 만큼 여야간 대치는 거의 없었다. 여야는 387조원 규모의 전체 예산안을 처음 볼 때는 이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안의 심사를 보류하곤 한다. 무쟁점 예산 처리로 1회독을 하고, 2회독과 3회독을 거치면서 쟁점 예산을 살피는 식이다. 이번달 안에 심사를 끝내야 하는데 따른 고육지책이다. 김 위원장은 “최대한 스피디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하자”고 했다.
이를테면 이날 미래부의 창조경제혁신센터 관련 예산은 보류됐다. 박근혜정부의 핵심사업인 창조경제가 정치적 쟁점이 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석준 미래부 차관은 “굉장히 심각한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도움을 주고자 하는 사업”이라면서 “대학의 취업지원센터와 지역의 고용복지센터를 (창조경제혁신센터와) 연계하는 사업”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범계 새정치연합 의원은 “전형적인 중복사업”이라며 반대했다. 이 차관은 중복사업 지적에 “처음하는 것”이라고 다시 설명했지만, 예결위 야당 간사인 안민석 의원은 “창조경제 관련된 건 (보류하고) 넘어가자”고 했다. 김재경 위원장도 이 예산은 일단 넘기고 2회독 때 다시 심사하기로 했다.
25억원이 반영된 미래부의 재난안전 플랫폼 기술개발사업 역시 보류됐다. 재난현장의 구조 통신망을 구축하는 사업인데, 이석준 차관은 “예산을 반영하지 않으면 내년 하반기에 연구가 안 된다”고 했다.
이에 공학자 출신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은 “정부 의견이 합리적인 것 같다”고 했지만, 박범계 이상직 새정치연합의원은 “보류로 넘기자”고 했다.
미래부에 이은 국방부 관련 예산 역시 여야간 이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업들은 무더기로 보류됐다.
국회 한 관계자는 “막판 국정교과서, 한국형전투기(KF-X), 누리과정(만 3~5세 무상 보육·교육) 등을 다룰 때 정쟁이 불거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야, 예산소위원 사·보임 방식 ‘변칙 운용’ 논란
예산소위 첫날 쟁점은 오히려 그 ‘내용’보다 ‘형식’에 있었다. 여야가 예산소위원을 17명으로 정했다가 당초 의결대로 15명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중간에 사·보임하는 식으로 변칙 운용을 하기로 한 까닭이다.
새누리당은 당초 9명의 소위원을 발표했는데, 이 중 이정현 의원(전남 순천·곡성)이 일단 빠지고 심사 중간쯤 안상수 의원(인천 서구·강화을) 대신 다시 들어간다는 것이다. 당초 8명의 소위원을 공개했던 새정치민주연합도 번갈아가며 1명씩 빠지는 방식으로 7명만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첫날에는 정성호 의원(경기 양주·동두천)이 제외됐다.
예결위원장 재량으로 소위원을 바꾸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다만 이는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로 꼽힌다. 예결특위 관계자는 “국회 내부적으로 파악해보니 예산소위원을 중간에 바꾼 경우는 전례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럴 경우 심사의 효율성과 집중도는 저하될 수 밖에 없다. 국회 예산심의권의 취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야의 이런 이심전심 타협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구 예산이 보장된 예산소위의 ‘자리값’이 높아진데 따른 꼼수다. 일각에서는 매해 예산소위원의 사·보임이 빈번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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