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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한 고등학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재직하던 이씨는 1980년 3월 군대에 입대한 지 한 달 만에 북괴와 김일성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다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 재판에 넘겨져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씨가 대학 재학 중 교정 등에서 친구들과 “김일성이나 박정희는 장기 집권에 있어서 마찬가지다”, “반공법은 국민을 억압하는 악법으로 폐기돼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하며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했다는 것이다.
해당 사건으로 교사에서 해직된 이씨는 옥살이를 마친 뒤 취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학원 등에 취업했지만 공안들의 훼방으로 해고당하기 일쑤였다.
사건 이후 19년이 지난 1999년 이씨는 김대중 정부 시절 특별사면으로 고등학교에 다시 복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난 4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해당 사건을 세부적으로 조사한 결과 보안사령부(현 방첩사)가 입대 전 이씨를 불법적으로 내사하거나 불법으로 잡아 가둬 구타와 고문을 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씨는 진화위의 판단 결과를 바탕으로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 10월 부산지법에서 재심 개시가 결정됐다.
재판부는 “1980년 3월 8일 구속영장 없이 불법 구금됐고, 그동안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피고인이 수사기관에 한 진술은 증거 능력이 없다”며 “김일성을 찬양하는 발언을 했더라도 국가의 존립·안전을 위태롭게 할 명백한 위험성이 있었음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씨는 무죄 선고 직후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해제 사태로 악몽에 시달렸다”며 “40여 년간 무거운 바위에 짓눌린 듯 살아왔는데 이제야 조금 가벼워진 기분”이라고 말했다.
아내 박문옥 씨는 “남편의 일생은 계엄으로 시작해, 계엄으로 끝났는데 만약 최근 계엄 사태가 지속됐다면 판결이 뒤집힐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