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이 지난 가운데, 국내 중소기업이 수입하는 나프타의 82.8%가 중동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26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중동 나프타 수입 비중이 약 60%인 데 비해, 중소기업은 82.8%로 대기업보다 중동 의존도가 훨씬 높았다. 2024년 기준 중소기업의 주요 수입국은 쿠웨이트(32.8%), UAE(27.1%), 카타르(16.0%), 사우디아라비아(4.1%), 이라크(1.7%) 순이다. 모두 호르무즈 해협에 묶인 나라들이다.
피해는 이미 현실이 됐다. 나프타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두 달도 안 돼 톤당 600달러에서 1100달러 이상으로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현재 국내에 남은 나프타 재고는 2주치도 채 안 되는 수준으로 줄었고,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기지인 여천NCC는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한화솔루션은 에틸렌 확보가 막히며 불과 이틀 만에 공장 가동을 멈춰야 했다. 조선업계도 선박 철판 절단에 쓰이는 에틸렌 가스 재고 부족 문제로 정부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페인트업계에서는 노루페인트·삼화페인트·KCC·제비스코가 일제히 20~55% 가격 인상에 나섰다. 대구 섬유업계에서는 “다음 달이 되면 판매 가능한 물량이 사실상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호소가 쏟아지고 있고, 지역 기업들 중에는 임시 휴업을 고민하는 곳도 나왔다.
가장 힘든 것은 원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즉각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다. 중기연은 “플라스틱·화학 업종과 알루미늄을 쓰는 금속 가공업 분야 중소 제조기업은 원부자재 가격 및 에너지 비용 상승의 영향을 동시에 받고 있어 영업이익률이 크게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채정묵 회장은 “전쟁 이후 톤당 20만원 수준의 가격 인상과 함께 공급 물량 조정이 이뤄졌고, 추가 인상과 공급 중단 가능성까지 통보받은 상황”이라며 플라스틱 공급 안정화, 가격 급등 방지, 원자재 가격 연동제 도입 등을 정부에 건의했다. 산업연구원은 3개월 이상의 구조적 공급 충격이 이어질 경우 전 산업 생산비가 9.4%, 제조업은 11.8%까지 급등할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도 긴급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4월 중순 비축유를 방출하고, 정유사가 수출하던 나프타 물량을 국내 석유화학업계로 우선 전환 공급하는 조치를 시행할 방침이다. 핵심 품목 40여 개를 집중 관리하는 공급망지원센터도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여천NCC·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DL케미칼은 각 사별 이사회를 통해 최종 사업재편안을 의결, 나프타 분해시설(NCC) 통합과 고부가 제품 중심의 구조 전환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LG화학 정종은 상무는 “원유나 LNG처럼 나프타에 대한 정부 차원의 비축 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기연 신민이 부연구위원은 “중동 전쟁이 길어질 것에 대비해 중소기업의 원부자재 수급 안정과 수출시장 다변화 지원을 선제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전략 비축, 우선공급 협력 체계, 대체 공급선 확보, 글로벌 사우스 등 신규 수출 시장 진출 지원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일본이 장기 투자를 통해 해외 유전과 넉넉한 비축 물량을 확보해 온 것과 달리, 한국은 하루 300만 배럴의 원유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여서 이번 사태가 에너지 안보의 구조적 취약성을 정면으로 드러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켓잉크 김건우 기자woowoong@market-in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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