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 부회장의 회장 승진…‘총수 부재’ 속 경영 안정
권오현 부회장의 회장 승진은 삼성 특유의 ‘신상필벌’과 ‘인재 경영’ 문화를 확고히 지키고, 총수 부재 상황에서 경영 안정을 꾀하겠다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재용 시대 ‘뉴(NEW) 삼성’의 화두인 ‘책임·투명 경영’에 고(故) 이병철 선대회장으로부터 이어져 온 삼성의 전통적 강점을 더하겠다는 것이다.
권오현 부회장은 지난 2011년 DS부문을 맡은 이후 6년 넘게 반도체 사업을 이끌며 올해 3분기엔 영업이익이 무려 10조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실적을 이뤘다. 그럼에도 정상의 자리에서 스스로 용퇴를 결심한 원로경영인에 대해 이재용 부회장이 최고 예우로 보답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에서 전문경영인 출신 회장 승진자가 나온 것은 고(故) 강진구 회장(1990년 승진) 이후 27년 만에 처음이다. 또 삼성 전체 계열사에서도 전문경영인의 회장 승진은 2001년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이후 16년 만이다. 그만큼 사상 최대 실적을 이룬 권오현 부회장의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는 의미다.
권오현 부회장을 기술 개발의 핵심인 종합기술원 회장으로 임명한 것도 그가 갖춘 고도의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을 활용, 삼성의 ‘인재 경영’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며 CR(Corporate Relations·외부 소통) 담당과 인재개발담당을 각각 맡긴 것도 삼성의 차세대 리더를 안정적으로 키우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특히 윤부근 사장에게 CR 총괄을 맡긴 것은 윤리의식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외부의 요구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원로 경영진들이 경영자문과 함께 후진 양성을 지원토록 해 안정감 있는 경영쇄신을 꾀할 수 있도록 했다”고 인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성과 뛰어난 50대 사장 전격 발탁…IM부문 승진자 없어
삼성전자는 사장 승진자 7명으로 모두 50대로 발탁하고 60대 이상 사업부장은 모두 물갈이했다. 세대교체와 함께 신상필벌의 원칙도 철저하게 지켜졌다.
이번 인사에서 사장으로 발탁된 7명 중 절반이 넘는 4명이 올해 삼성전자의 사상 최대 실적을 이끈 DS부문에서 나왔다. 반도체 분야에서 사장 승진자가 4명이 나온 것은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처음이다. 우선 DS부문의 각 사업을 이끌고 있는 진교영(55) 메모리사업부장과 강인엽(54) 시스템LSI 사업부장, 정은승(57)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부장 등 3개 사업부 수장 전원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특히 이들 3명은 모두 올해 사업부장으로 임명된 인물들로 불과 1년도 안 돼 초고속 승진의 주인공이 됐다. 이 중 강인엽 사장은 최연소 승진자이기도 하다. 또 다른 승진자인 황득규(59) 사장은 DS부문에서 구매팀장과 감사팀장, 기획팀장 등 지원 부문을 두루 거쳤고,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구축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중국삼성 책임자로 임명됐다.
해외 영업·마케팅과 CE부문, 지원 부문 등에서는 각각 1명씩의 사장 승진자가 나왔다.
팀 백스터(Tim Baxter·56) 북미총괄은 휴대폰·TV·생활가전 등의 미국 시장 1위 이끈 공로로 삼성전자의 첫 외국인 사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CE부문에서는 김현석 부문장을 대신해 한종희(55) 부사장이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장을 맡으며 사장으로 진급했다. 신임 한종희 사장은 TV개발 분야 최고 전문가로 11년 연속 글로벌 TV시장 1위를 지켜내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또 이상훈 사장에 이어 경영지원실장 겸 CFO(최고재무관리자)로 승진·내정된 노희찬 사장도 재무관리 전문가로 삼성디스플레이 경영지원실장으로 수행한 업적을 인정받았다는 평가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핵심 보직으로 스마트폰 사업을 총괄하는 무선사업부장은 고동진 사장이 그대로 겸직, IM부문에선 단 한 명의 사장 승진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갤럭시노트7’ 단종사태에 대한 철저한 규명과 사후 조치로 올해 들어 ‘갤럭시S8’과 ‘갤럭시노트8’ 등을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작년 3분기 IM부문 영업이익이 1000억원에 그치는 등 큰 손실을 입은 영향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