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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신용평가에서 당사의 온·오프라인 매출 증가, 부채비율 개선 등 긍정적 사항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신용등급이 하락했다”면서 “신용등급이 낮아져 향후 단기자금 조달 측면에서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회생 절차 신청이 사전 예방 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앞서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홈플러스의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A3’에서 ‘A3-’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신용평가 기준 A3란 ‘적기상환가능성은 일정수준 인정되지만, 단기적인 환경변화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홈플러스의 경우 동일 등급 내에서도 마이너스(-) 표기가 됐다. 이는 ‘적기상환가능성에 불확실성이 내포돼 있어 투기적인 요소가 크다’는 의미의 B등급보다 겨우 한 등급 높은 상황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낮은 신용등급은 자금조달 규모 측면에서 어려움이 있고, 이자 부담도 커진다.
홈플러스의 모회사 사모펀드 MBK파트너스(MBK)는 지난 2015년 약 7조원을 들여 홈플러스를 인수했다. 당시 MBK는 빌린 돈으로 인수 자금의 대부분(약 5조원)을 충당했다. 이는 고스란히 홈플러스의 차입금이 됐다. 이후 MBK는 홈플러스 점포 20여개를 팔아 4조원 가량의 빚을 갚았다. 그러나 내수 침체와 오프라인 유통업 부진 등으로 유동성이 악화하면서 지속 운영이 어려워졌다.
특히 의무휴업 등 대형마트 규제가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발목을 잡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초저가 이커머스인 알리와 테무까지 등장해 업황은 더욱 나빠졌다. 잔여 계약기간 동안의 모든 임차료를 계상한 리스부채를 제외하고, 운영자금 차입을 포함한 홈플러스의 실제 금융부채는 약 2조원으로 추산된다.
이날 서울회생법원이 선제적 구조조정을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홈플러스는 금융부채에 대한 부담을 한시름 덜 수 있게 됐다. 금융채권 상환이 유예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4조 7000억원이 넘는 부동산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향후 금융 채권자들과의 조정도 어렵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반적인 상거래 채무는 회생절차에 따라 전액 변제되며, 임직원들의 급여도 정상적으로 지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홈플러스는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현금 흐름을 보여주는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2024년 2월 1일~2025년 1월 31일 기준 2374억원으로 플러스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이번 회생 결정으로 금융 부담이 줄어들면 향후 현금 수지가 대폭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당장 급한 불은 껐지만, 문제는 미래다. 가장 큰 우려는 협력사 불안과 고객 이탈이다. 지난해 티메프(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를 겪었던 만큼 쉽게 신뢰를 회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실상 이번 회생 신청은 MBK가 홈플러스 경영해 실패했다는 것을 자인한 것”이라며 “앞으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측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납품 업체, 직원은 물론 상권까지 붕괴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홈플러스의 사업 지속성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현재 홈플러스는 대표 할인 행사 ‘홈플런’을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회생 신청을 할 만큼 상황이 급박했다는 얘기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홈플러스 납품업체 대금 정산이 늦어진다는 얘기가 있었다”며 “여기에 신용등급 하락까지 겹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대형 식품업체 등 홈플러스 협력사들은 우선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한 납품업체 관계자는 “지금까지 정산 관련해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납품도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며 “홈플러스가 협력사들과 적극 소통하며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MBK의 홈플러스 차입인수와 경영실패 논란도 이어질 전망이다. 애초에 이번 홈플러스 회생 신청 사태는 MBK가 과도한 차입에 의존한 것이 화근이라는 지적이 많다. MBK는 이런 상황에서 금융채무 탕감과 조정을 위해 법원에 손을 내민 셈이다. 도덕적 헤이(모럴헤저드)라는 비판이다. 그간 투자금 회수에만 골몰해 정작 홈플러스의 경쟁력은 떨어졌다는 지적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MBK는 2018년부터 현재까지 홈플러스 경기 안산점 등 점포 20여곳을 매각해 왔다.
홈플러스는 회생 방안으로 부동산 자산 매각을 내세우고 있지만 침체 상황에서 제값 받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홈플러스 노조는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점포 매각을 통한 일시적인 자금 확보는 기업의 근본적인 문제(영업적자, 소비 트렌드 변화)를 해결하는 근본적 해법이 아니다”며 “대형마트 산업의 구조적 변화(온라인 소비 증가, 근거리·소량 구매 트렌드 확대)에 대응하지 못한 채 단기적인 자산 매각에 의존한 결과, 기업의 미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