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갤러리] '스크래치' 난 아파트주차장…김유정 '사이 섬'

오현주 기자I 2022.10.27 17:46:14

2021년 작
벽화제작 사용하는 프레스코기법 차용
석회벽 긁어낸 음각의선으로 그린 그림
"화면 흠집 내 형상 찾는 행위로서 풍경"

김유정 ‘사이 섬’(2021·사진=갤러리526)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순간’이 만들었을 전경이 아닌가. 태풍이든 돌풍이든 어디선가 불어온 센 바람이 나뭇가지를 덩어리째 꺾어버렸고, 휘리릭 날아간 굵은 가지는 짧은 배회 끝에 어느 아파트 주차장으로 안착해 차와 차 사이 공간에 푸른 섬으로 떴을 거다.

일상이라기보다 차라리 사건·사고에 가까운 이 장면에 작가 김유정은 ‘사이 섬’(2021)이란 감칠맛 나는 작품명을 달았다. 그런데 말이다. 이 구구절절한 스토리를 무색하게 하는 건 되레 화면이다. 색이며 질감이며 못 보던 화면으로 묵직한 인상을 심어내고 있으니.

작가는 벽화제작에 사용하는 프레스코기법을 차용해 작업한다. 석회벽이 채 마르기 전 빠르게 수성안료를 입히는 프레스코화가 요구하는 정교한 숙련도를 가져와, 조각도로 석회벽을 긁어내 나온 음각의 선으로 그림을 그린다니 말이다.

이 작업을 두고 작가는 “스크래치로 재현하는 인공적 풍경은 현대인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화면에 흠집을 내 형상을 찾아가는 행위로서의 풍경”이라고 말이다. 그 완성을 위해 작가는 ‘인간세상에 찾아든 식물’을 즐겨 등장시키는데. 기꺼이 사회화한 식물이 사람 사는 동네에 섞여가는 ‘희망’을 기발하게 끌어냈다고 할까. 의도하지 않은 환경, 의도를 넘어선 조경 너머의 의미를 진하게 새겨뒀다.

11월 5일까지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28길 갤러리526서 이진영과 여는 2인전 ‘마르기 전에’(Wet Layers)에서 볼 수 있다. 석회벽에 프레스코·스크래치. 120×120㎝. 갤러리526 제공.

김유정 ‘중간서식지’(2021), 석회벽에 프레스코·스크래치, 120×120㎝(사진=갤러리526)
이진영 ‘유기적 풍경’(Organic Landscape·2022), 실크오간자에 잉크젯프린트·아크릴·망사·바느질, 103.5×80.5㎝(사진=갤러리526)
이진영 ‘운화몽’(2019), 한지에 잉크젯프린트, 92.3×120.3㎝(사진=갤러리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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