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항만·발효문화·구석기축제… 관광정책, 도시를 살렸다

[이데일리 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지역 소멸 위기와 경기 침체 속에서 관광은 더이상 부차적 선택이 아니다. 지역의 약점을 강점으로 바꾸는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지난 16일 한국관광정책연구학회(TOPA, 회장 이연택 한양대 명예교수)가 서울 종로 삼일빌딩 서울관광플라자에서 개최한 ‘2025 제3회 대한민국 관광정책대상’ 시상식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동해 묵호항의 재생부터 순창 발효문화의 현대화, 연천 구석기축제의 글로벌화까지, 7개 지자체가 제시한 정책은 지역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잘 드러냈다.

제3회 대한민국 관광정책대상 수상 지자체 관계자들이 상패와 인증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사진=강경록 여행전문기자)

약점을 강점으로 만든 지자체의 전략

강원 동해시는 쇠락한 항만을 관광 자원으로 전환했다. ‘묵호권 특화관광지 개발사업’을 통해 스카이밸리·논골담길·전망대 등을 연결한 신규 동선을 구축했다. 임정규 국장은 “계획보다 방문객의 실제 흐름을 관찰하고 조율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현지 숙박 및 체험 시설이 제한적이어서 체류 시간이 짧게 나타나는 점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원도 관광 통계에서도 지적되는 부분이다.

서울 은평구는 대도시 외곽이라는 지리적 한계를 성장의 자원으로 삼았다. 불광천과 진관사, 한옥마을을 잇는 ‘문화관광벨트 조성사업’을 통해 도심 집중을 분산하고 균형 발전 모델을 제시했다. 김재용 부구청장은 “서울 외곽도 충분히 문화관광의 거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연구원과 관광재단 자료에 따르면 현재 방문객의 평균 체류 시간은 단기 체험 위주에 머물러 있어 체류형 관광지로 발전하기 위한 프로그램 다변화가 과제로 지목된다.

충북 괴산군은 청정 자연을 활용한 생태관광에 주력했다. 산막이호수길을 따라 조성된 순환형 탐방로가 핵심이다. 장우성 부군수는 “생태 보전과 지역경제를 함께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괴산군청과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개장 초기 이후 방문객 증가세가 완만해, 계절·테마별 콘텐츠 강화와 재방문율 제고 전략이 필요하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온다.

경북 영덕군은 웰니스 산업을 접목해 관광의 색을 달리했다. 송이와 해양 치유 자원을 중심으로 한 ‘웰니스관광 육성사업’이 대표적이다. 김광열 군수는 “좋은 기운을 얻는 관광도시”를 목표로 내세웠다. 경북도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관광객 1인당 평균 체류 시간은 도내 평균보다 짧은 편으로, 숙박·식음 등 지역 소비 확장 방안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제시된다.

16일 열린 ‘대한민국 정책대상’에서 동해시와 순창군 등 7개 자자체가 우수도시로 선정됐다.

전북 순창군은 전통 발효문화를 현대적 관광 콘텐츠로 발전시켰다. 장류축제와 떡볶이 페스타를 결합한 ‘발효문화관광 마케팅사업’이 세대 간 접근성을 높였다. 최영일 군수는 “발효문화는 순창의 정체성”이라고 밝혔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과 전북도 자료에 따르면 브랜드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전국 단위 파급력과 해외 시장 확장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향후 마케팅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 연천군은 접경지 이미지를 문화 브랜드로 전환했다. 1993년 주민과 공무원이 선사 복장을 입고 시작한 ‘구석기축제’가 세계 구석기엑스포로 성장했다. 류호국 부군수는 “접경지역의 한계를 문화관광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 경기연구원과 연천군 자료는 국제 교류 비중과 전문 전시·교육 프로그램이 아직 제한적임을 보여주며, 글로벌 행사로 발전하려면 해외 협력과 학술 교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경남 진주시는 캐릭터 산업을 도시 홍보의 전략으로 채택했다. 대표 캐릭터 ‘하모’와 동생 캐릭터 ‘아요’를 중심으로 한 ‘하모 관광캐릭터 사업’은 도시 이미지를 감각적으로 알리는 수단이 됐다. 차석호 부시장은 “캐릭터는 도시 정체성을 담는 또 다른 언어”라고 설명했다. 경남연구원과 지역 관광 보고서는 캐릭터 기반의 관광 모델이 인지도를 높였으나 장기적 수요를 유지하려면 연계 상품과 지속 프로그램 개발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16일 열린 ‘제3회 대한민국 관광정책대상 시상식’에서 순창군 최영일 군수(왼쪽 두번째)와 이연택 회장(왼쪽 세번째)이 수상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관광은 시설이 아니라 흐름이다

시상식 직후 열린 정책 좌담회의 주제는 ‘지역의 혁신, 관광정책에서 답을 찾다’였다. 영덕군을 시작으로 각 지자체 대표가 순서대로 발언하며 지역 현안을 공유했다. 최영일 순창군수는 “축제는 지역 경제가 숨 쉬는 시간”이라고 말했고, 장우성 괴산군 부군수는 “김장축제 등 신규 프로그램으로 관광객 감소를 막겠다”고 밝혔다. 임정규 동해시 국장은 “방문자의 흐름을 발견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좌담회에 참여한 심사위원단은 “관광은 시설 개발보다 흐름과 동선을 설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한국 지자체의 정책 흐름은 일본과 유럽의 경험과 맞닿아 있다. 일본의 ‘마치즈쿠리’는 주민이 주도해 지역 정체성을 강화한 대표적 사례로, 연천군의 구석기축제와 유사한 면을 보인다. 프랑스의 여러 소도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활용해 도시를 재생했고, 독일은 폐광과 공단을 문화관광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는 동해 묵호항과 괴산 산막이호수길처럼 기존 자원을 새로운 관광 동력으로 바꾼 국내 사례와 궤를 같이한다.

차이점도 분명하다. 일본과 유럽은 국가 차원의 장기 재정 지원과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한 반면, 한국은 지자체 단위의 실험이 활발하지만 장기적 재정 기반과 제도화 수준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로 인해 성과가 일회성에 머무를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이번 수상 지자체들은 공통적으로 지역의 한계를 기회로 전환했다. 버려진 항만을 관광 거점으로, 대도시 외곽의 자원을 문화벨트로, 접경지를 국제 축제로 발전시키는 전략은 지역 생존을 넘어 국가 관광 경쟁력을 높이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연택 한국관광학회 회장은 “올해 수상 사례들은 지역의 현실과 맥락에 맞춘 정책이 돋보였다”며 “관광정책이 단기 성과를 넘어 도시의 미래 전략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총평했다. 이어 “학회는 앞으로 지역 간 정책 교류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실행 중심의 협력 플랫폼으로서 지역관광 혁신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