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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셋에 따르면 리라화는 이날 오전 아시아 금융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7.131리라를 기록, 전일대비 10% 하락했다. 이 때문에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3% 가까이 떨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는 9.2% 하락했고, 중국 위안화도 홍콩시장에서 달러당 6.8911위안을 기록해 최근 1년내 최저 수준에 근접했다. 아시아 기업 및 국가들의 채무불이행에 대한 우려도 확산됐다. 마킷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5년 만기 CDS 가격은 각각 13.8%, 10% 급등했다.
이처럼 터키 리라화 폭락이 아시아를 비롯한 주요 신흥국 금융시장을 뒤흔들면서 전세계 신흥국 위기로 번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독일 도이체방크의 토르스텐 슬로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터키가 국내총생산(GDP)의 세계 총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라며 부정적 여파가 크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JP모건어셋매니지먼트의 케리 크레이그 글로벌 시장 전략가는 “리라화 폭락은 더이상 악화될 수 없을 지경이다. 이미 투자자들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리라화 폭락이 단기적으로는 다른 신흥국 시장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면서도 “(리라화 폭락은) 터키에만 국한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기적으로는 신흥국들의 긍정적인 펀더멘탈에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미국의 금리 상승이 달러 차입비용 증가로 이어져 달러 강세를 유발할 수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우려했다. 프랑스계 금융회사 나티시스의 찡 응우웬 이머징마켓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통화정책으로 지난 수년 동안 신흥국엔 유동성이 넘쳐흘렀다”면서 “유동성 공급은 점진적으로 이뤄졌지만 빠져나갈 때는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각 신흥국들에 흘러들어간 외국인 투자자금이 한꺼번에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날 터키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리라 채무 지급준비율을 250bp(1bp=0.01%포인트) 낮추고, 외화부채 지준율은 최대 3년 만기 기준으로 400bp 낮췄다. 또 리라화 유동성 공급을 위해 외환 담보 보증금 한도를 72억유로에서 200억유로로 높이고, 외환 보증금 대출을 기존 일주일 만기뿐 아니라 1개월 만기로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을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며 “유동성도 필요한대로 공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체제 하에서 터키 중앙은행의 위기 대응 능력, 즉 독립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문이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리라화 폭락으로 터키의 부채 상환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커먼웰스파이낸셜네트워크의 브래드 맥밀런 수석 투자전략가는 터키의 외채 상환 능력이 떨어지면 터키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신흥국들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악영향을 받을 수 있는 국가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러시아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노르데아의 모튼 룬드 외환분석가는 “터키 중앙은행은 리라화 방어를 위한 두 가지 옵션이 있다. 하나는 강제로 투자자의 자본이탈을 제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급격히 금리를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터키 금융위기 위험이 다른 신흥국들에 대한 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신흥국 통화는 대부분 하락세를 보인 반면, 안전자산인 미국 달러, 일본 엔, 스위스 프랑에 대한 수요는 증가했다.
영국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윌리엄 잭슨 이머징마켓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수 개월 간 일어서던 신흥시장이 또 역풍에 직면했다”면서 “중국 경제가 둔화되고 신흥국 시장은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돌리고 있다. 또 무역전쟁에 따른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신흥국 시장에 대한 투자심리가 악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