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 하듯 車 만든다"..씨 마른 반도체에 車기업 울상

이승현 기자I 2021.03.25 17:33:17

그동안 잘 버틴 현대차·기아 '4월 감산설' 나와
3분기까지 생산차질 불가피.."위기관리계획 점검"
막 출발하는 전용전기차 '아이오닉5' 타격 우려
GM 미주리공장, 내달 12일까지 생산 중단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김정남 뉴욕 특파원] “테트리스 하듯 자동차를 만들고 있다.”

최근 만난 자동차업계 관계자의 푸념이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 사태 속에 반도체가 확보대는 대로 관련 부품을 만들고 인기 차종 중심으로 생산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다. 마치 조각이 맞춰지는대로 차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데일리 이영훈 기자] 현대자동차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5’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용산구 현대 드라이빙라운지 원효로에서 공개됐다.


전세계 자동차업계가 반도체 수급에 비상이 걸렸다.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면서 주요 업체들은 줄줄이 생산량을 줄이고 있다. 이미 감산 중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중형 픽업트럭 생산을 추가로 줄이기로 했다. 이미 감산에 들어간 한국GM에 이어 현대차·기아 역시 4월 감산설이 나오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전용 전기차 사업에 타격이 우려된다.

◇아이오닉 5, 내연기관 대비 반도체 2배 이상 소요

국내에서는 현대차·기아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동안 지난해 10월부터 쌓아놓은 재고를 활용해 정상적으로 생산을 해 왔지만 최근 들어 공급 부족 압력이 거세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는 매주 재고 현황을 파악했지만 최근에는 주 2~3회씩 상황 점검을 하고 있다. 우선 주문이 밀려있는 그랜저, 제네시스 G80, 카니발, 쏘렌토 등 인기차종을 중심으로 부품 공급을 몰아주고 있다. 최근 쏘나타 생산을 5일간 중단하고 버스와 트럭을 생산하는 현대차 전주공장의 가동을 5일간 멈춘 것도 반도체 부족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2분기부터 본격적인 생산 차질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당장 반도체 수급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수급 상황이 풀릴 것으로 보이는 3분기까지는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며 “각 기업들마다 위기 관리 계획을 점검하며 대비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올해부터 본격화되는 전기차산업이 시작부터 큰 난관을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는 이미 생산을 시작했고 기아 ‘EV6’ 역시 반도체 부족 사태가 심화될 것을 관측되는 하반기부터 생산에 들어간다. 아이오닉 5의 경우 사전계약 물량이 첫날(2월 25일)에만 2만3000여대를 기록했고, 최근에는 4만대를 넘어섰다. 올해 생산계획 물량 7만대의 절반 이상을 이미 채운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 부족 사태로 인해 생산에 차질이 예상되면서 전체 판매계획도 낮춰야 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용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 차보다 2배 이상 반도체가 더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타격이 더 심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오닉5에는 500여개 이상의 반도체가 들어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정만기 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차량용 반도체 공급 차질은 우리 자동차 업계의 위기를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며 “TSMC 등의 증산을 대만 정부에 요청하는 등 정부차원의 국제협력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진=AFP 제공)


◇GM의 ‘고육지책’..수익성 높은 차량 생산에만 집중

해외 자동차 기업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4일(현지시간) CNBC 등에 따르면 미국 자동차노동조합(UAW) 지역 조직은 소속 노동자들에게 GM 미주리주 공장이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가동을 중단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메시지를 보냈다. 미주리주 공장에서 생산을 줄이는 차종은 중형 픽업트럭인 GMC 캐니언과 쉐보레 콜로라도 등이다. GM은 구체적인 감산 물량은 밝히지 않았다. 다만 미주리주에서 승합차는 계속 만들 것이라고 회사 측은 전했다.

GM은 아울러 미주리주 공장의 하반기 가동 중단 기간을 예정보다 2주 앞당기기로 했다. 5월24일~7월19일로 조정했다.

GM의 조치는 부족한 차량용 반도체를 수익성 높은 풀사이즈 픽업트럭과 SUV 등을 생산하는데 집중하려는 것이다.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데이비드 바나스 GM 대변인은 “GM은 쓸 수 있는 모든 반도체를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출하하는데 활용할 것”이라며 “풀사이즈 트럭 공장은 가동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드는 이번주 미주리주 공장에서 트랜짓 밴 생산을 줄일 것이라고 이날 전했다. 다만 주력 기종인 F-150 픽업트럭 생산은 유지하기로 했다. GM과 마찬가지로 ‘돈 되는’ 차종에 일단 반도체를 몰아주는 식으로 공장을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외에 혼다, 도요타, 폭스바겐 등 주요 업체들은 이미 감산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 품귀는 갈수록 더 심화하고 있다. 미국의 기록적인 정전 사태로 NXP, 인피니언 같은 차량용 반도체 전문업체들이 라인 가동을 멈춘 데다, 세계 3위 차량용 반도체 제조업체인 르네사스가 예기치 못한 화재로 가동을 중단해서다. 바르나스 대변인은 “(차량 생산에 미칠) 르네사스 화재의 여파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컨설팅회사 알릭스파트너스 분석을 보면, 올해 전세계 자동차업계는 반도체 부족으로 606억달러(약 69조원) 규모의 매출액 감소를 겪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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