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장애친화 산부인과 '성애병원'.."장애인 산모 눈높이 딱 맞췄네"

안치영 기자I 2024.11.05 15:55:44

장애인 산모 눈높이 맞춰 분만·신생아 치료 인프라 개선
장애 친화 산부인과 많아질수록 분만 인프라도 함께 향상
'적자 분만실·신생아중환자실 여건 개선'…추가 확대 필요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최근 신생아중환자실을 포함한 분만실 운영은 적자의 연속이었다. 존폐의 갈등을 느끼던 차에 장애 친화 산부인과 사업에 참여하게 됐으며 이번 사업을 계기로 분만에 대해서 사명감을 새롭게 다지는 계기가 됐다.”

5일 성애병원에서 만난 장석일 성애의료재단 의료원장은 지난 달 30일 문을 연 장애 친화 산부인과 개소에 대한 사업 참여 취지를 이같이 설명했다. 장 의료원장의 발언에는 장애인 산모만이 아닌 저출산 시대에 모든 환자에게 좀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1968년 설립된 성애병원은 총 258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으로 현재 550여 명의 직원 중 전문의 60명, 일반의 5명, 전공의 한 명 과 인턴 두 명 등 총 68명의 의사가 근무 중이다.

성애병원 전경. (사진=성애병원)
◇장애인 산모 눈높이 맞춘 성애병원

성애병원은 이번 장애 친화 산부인과 개소를 위해 장애인 산모가 주로 이동하는 동선을 위주로 시설개선을 진행했다. 분만실과 병실이 위치한 신관 3층, 7층을 비롯해 산부인과 외래진료실이 있는 본관 2층 등이 개축됐다. 주출입구인 본관 1층의 경사로와 신관 1층의 장애인 주차구역, 보행통로 공사도 시행했다.

무엇보다도 시설 내부를 장애인 산모 눈높이에 맞춘 점이 눈에 띄었다. 성애병원은 장애인 산모 이동 동선에 있는 핸드레일을 바닥으로부터의 높이, 손잡이의 굵기, 벽면과의 이격거리 등을 고려해 모두 교체했다고 한다. 장애인 산모가 드나들 수 있는 방문의 문 손잡이를 역시 높이, 형태, 자동문 버튼의 위치 등을 고려했다. 외래진료실, 가족분만실, 병실 등 환자가 누워서 진료를 볼 수 있는 공간은 모두 진료대 옆으로 의료진과 환자 접근이 쉽도록 공간을 확보했다. 장애인 산모와 신생아는 산부인과 전문의 두 명과 5명의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진료한다. 산부인과 병동과 신생아 중환자실에도 간호사 등 전담 인력이 근무 중이다. 복합질환에 대응하는 협진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분만실 모습. 분만대와 진료대 간 충분한 공간이 확보될 수 있도록 했다. (사진=성애병원)
분만실 겸 병실의 모습. 중앙에 위치한 분만대 겸용 전동 침대는 산모가 침대에 누워 분만대기를 하다가 유사시 분만대로 전환하여 출산을 진행하게 된다. 이동이 불편한 장애인 산모의 경우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비다. (사진=안치영 기자)
성애병원은 장애인 산모 이동 동선에 있는 핸드레일을 바닥으로부터의 높이, 손잡이의 굵기, 벽면과의 이격거리 등을 고려해 모두 교체했다. (사진=안치영 기자)
◇장애 친화 산부인과 많아질수록 분만 인프라도 향상돼

성애병원이 큰 비용과 많은 인력을 투입하면서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개소한 이유는 장애인 산모뿐만 아니라 병원을 모든 환자에게 좀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과거 많은 환자와 산모의 분만을 책임졌던 성애병원은 바뀐 시대상에 적응하고자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의 도움을 받았다. 지역사회 거점 종합병원으로 거듭날 채비를 갖추겠다는 각오다.

과거 성애병원은 서울 서남권의 분만을 책임졌던 병원이다. 1968년 설립된 성애병원은 설립 당시 산부인과, 소아과로 시작한 병원으로 지금까지 13만여 건의 분만을 진행했다. 수많은 분만과 신생아 치료 경험이 성애병원에 녹아있지만 최근 초저출산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러한 내공을 발휘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산모를 위한 병원들이 주변에서 하나둘 사라지고 있고 성애병원 또한 한 달 분만 건수가 30건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장애 친화 산부인과 사업은 장애인 산모뿐만 아니라 서울 서남권역 분만 인프라 향상에도 큰 도움을 줬다. 정부는 올해 성애병원에 시설 개보수와 장비구매비 3억 5000만원을 지원했으며 내년부터 운영비 명목으로 1억 5000만원을 지원한다.

이동식 전동리프트. 장애인 산모가 휠체어에서 진찰대로 이동할 때 보조해주는 기구다. (사진=안치영 기자)
분만실 내 화장실 모습. 화장실의 출입문 폭, 영유아거치대 높이, 세면대 와 거울의 높이, 세면대 손잡이 폭, 자동문과 비상벨 높이 등을 장애인 시설 기준에 맞게 개선했다. (사진=안치영 기자)
성애병원이 장애 친화 산부인과 개소를 위해 투입한 시설비는 병원을 찾는 산모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특히 성애병원이 운영 중인 신생아중환자실 4개 병상은 신생아 환자의 최후 보루다. 산모와 신생아를 위해 거점별로 반드시 필요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는 병원이 적자를 감수하며 운영해야만 했다. 정부가 장애 친화 산부인과에 지급하는 운영비는 신생아중환자실을 운영하는 병원 부담을 조금이나마 줄여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장애 친화 산부인과가 지역 곳곳에 거점별로 지정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국에 총 10곳의 장애 친화 산부인과가 지정됐지만 전남과 충남, 강원도에는 아직 장애 친화 산부인과가 없다. 임현규 복지부 장애인지원과장은 “앞으로도 많은 여성장애인이 장애친화 산부인과를 통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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