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개 문화유산 학회·협회 "종묘 앞 고층건물 개발 중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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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기자I 2025.11.12 15:30:02

12일 서울시 규탄 성명 발표
종묘 가치 훼손 우려 표명
"세계유산, 주변 경관도 포함"
학술대회 등 공동 대응하기로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27개 역사학·고고학·민속학 관련학회와 6개 문화유산 관련 협회가 서울시의 종묘 인근 고층건물 개발 시도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한국문화유산협회 등 문화유산 관련 협회와 역사학고고학민속학 관련학회가 12일 서울 중구 모임공간 상연재에서 연 종묘 앞 고층 개발 시도 규탄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들은 12일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층 건물의 배치는 종묘의 가치와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우리의 삶에서 역사적 전통과 기억을 제거하고 문화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무분별한 개발행위에 적극 반대한다”고 밝혔다.

학회·협회 측은 “서울 도심 안에 자리하고 있는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그동안 그 주변의 난개발을 자제하면서 경관과 함께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종묘 앞 고층 개발은 밖에서 세계유산을 바라보는, 그리고 세계유산에서 사방을 바라보는 경관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학회·협회 측은 서울시에 △종묘 인접 지역의 건물 층고 상향 규제 완화 즉각 철회 △종묘 주변의 개발 사업계획의 투명한 공개와 관련 기관·전문가·학술단체 자문과 평가를 통한 건물 배치와 높이 기준 마련 △종묘 인접 지역에 대한 종묘 경관 영향을 줄 수 있는 고층 건물 인허가 전면 중단을 촉구했다.

한국문화유산협회 등 문화유산 관련 협회와 역사학고고학민속학 관련학회가 12일 서울 중구 모임공간 상연재에서 연 종묘 앞 고층 개발 시도 규탄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연경 한국건축역사학회 홍보이사(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은 “문화유산은 ‘세계유산’과 ‘국가유산’ 등의 체계가 있고, 이 체계에 따라 어떤 유산은 주변경관까지 보관을 하고, 어떤 건 건물만 보존하는 등의 기준이 있다”며 “종묘는 세계유산으로서 등재 당시의 가치를 지켜야 하는, 보존 강도가 가장 높은 유산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유산은 단순히 유형적인 건물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 건물 주변 사람들의 모든 삶과 문화, 자연까지 포함하는 것”이라며 “그렇기에 종묘 앞 고층 건물은 단순히 그늘이 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경과을 훼손하는 것이며 이를 보존하고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화유산 학회·협회들이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성명 발표를 시작으로 종묘 앞 고층건물 개발을 막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이성주 한국고고학회장(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은 “이번 종묘 관련 논란은 학술적으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며 “추후 학술대회 등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국문화유산협회 등 문화유산 관련 협회와 역사학고고학민속학 관련학회가 12일 서울 중구 모임공간 상연재에서 연 종묘 앞 고층 개발 시도 규탄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및 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결정(변경) 및 지형도면’ 고시를 통해 종묘 인근 세운4구역의 건축물 최고 높이를 72m에서 145m로 변경했다. 여기에 대법원이 지난 6일 문화체육관광부의 ‘서울특별시문화재보호조례중 개정조례안 의결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 종묘 인근에 고층건물을 세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에 문체부와 국가유산청은 종묘 앞 고층건물 개발을 막기 위한 법률 제·개정 등 모든 대책을 강구하기로 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지난 10일 종묘를 찾아 “정부는 이 문제를 일방 진행되지 않도록 제도적인 방책도 마련하고 더 근본적으로는 이 문제가 국민적 관심과 공론 토론 속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장을 열겠다”고 밝혔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종묘 앞 고층 개발 시도를 규탄하는 학회·협회의 성명서

역사학, 고고학, 민속학 관련 27개 학회와 문화유산 관련 6개 협회는 세계유산 종묘의 하늘과 시야를 가리는 고층 개발의 시도를 단호히 규탄한다. 이 고층 건물의 배치는 종묘의 가치와 존엄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우리의 삶에서 역사적 전통과 기억을 제거하고 문화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에 우리 학회는 이 무분별한 개발행위에 적극 반대한다.

종묘는 조선시대 최상위 격식을 갖춘 제사 건축이다. 장엄하지만 검소하고 질박한 최고의 예술적 건축공간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보존되고 있다. 서울 도심 안에 자리하고 있는 종묘가 세계문화유산의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은 그동안 그 주변의 난개발을 자제하면서 경관과 함께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묘 바로 앞, 세운 4구역 재개발 지역의 층고 규제를 대폭 완화하여 기존 71.9m에서 이제 145m의 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허용한 재정비계획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종묘 앞 고층 개발은 밖에서 세계유산을 바라보는, 그리고 세계유산에서 사방을 바라보는 경관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고층 건물이 그처럼 지배적인 위치로 솟아오르게 되면 인접한 종묘 경관은 그 아래 억눌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종묘 주변에 고층 건물을 배치하여 경관을 훼손하지 말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위원회의 권고는 그래서 결코 쉽게 넘겨버릴 말이 아니다. 문화유산 주변의 고도 상향을 결정할 때 그것을 단순히 개발 이익과 관련된 문제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며 사회 전체의 과제로 생각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만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우리 학회는 종묘 주변의 고층개발과 고도 상향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사업 내용의 사전 공개와 독립적인 전문가 평가에 근거한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종묘 위로 고층 건물이 압도하는 경관을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 건물의 높이와 배치에 관한 공개된 기준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마무리되기까지는 성급한 인허가는 지양해야 하며 이것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키려는 최소한 태도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과거로부터 전해진 문화유산을 온전히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전해 줄 의무가 있다. 문화유산이란 존재 그 자체와 그것이 지닌 가치에 대해서는 우리가 함부로 변경하거나 훼손할 수 없다. 이것이 문화선진국으로 가려는 우리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책무라 할 수 있다. 이번 세운 4구역 재개발 지역 고층 건물의 허용은 당장 종묘의 경관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겠지만, 이것이 선례가 되어 같은 5대 궁궐과 조선왕릉의 주변도 거대한 콘크리트 숲에 둘러싸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연구하는 여러 학회는 종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연대를 결성하고, 이 공동성명서를 공표하며, 종묘의 엄숙함과 격조, 그리고 열린 하늘을 지켜내기 위해 공개토론, 현장검증, 제도개선을 위한 공론의 장을 넓혀갈 것이고, 이에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나, 서울시는 종묘에 인접한 지역의 건물 층고를 상향하는 규제 완화를 즉각 철회하라.

하나, 서울시는 종묘 주변의 개발 사업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관련 기관과 전문가와 학술단체의 자문과 평가를 거쳐 종묘의 경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건물 배치와 높이의 기준을 새로 마련하라.

하나, 서울시는 종묘에 인접한 지역에 대해 종묘의 경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고층 건물의 인허가를 전면 중단하라.

2025. 11. 12.

역사학·고고학·민속학 관련학회: 무형유산학회, 부산고고학회, 비교민속학회, 실천민속학회, 역사교육학회, 역사문제연구소, 영남고고학회, 조선시대사학회, 중부고고학회, 한국건축역사학회, 한국고고학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구석기학회, 한국대중고고학회, 한국도시사학회, 한국목간학회, 한국미술사학회, 한국민속학회, 한국사연구회, 한국상고사학회, 한국신석기학회, 한국역사교육학회, 한국역사민속학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역사학회, 한국중세고고학회, 한국청동기학회, 호남고고학회, 호서고고학회(29개 학회 가나다 순)

문화유산 관련 협회: 국가유산기능인협회, 국가유산수리기술자협회, 국가유산보존기술협회, 국가유산수리협회, 한국국가유산실측설계협회, 한국문화유산협회(6개 협회,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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