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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가계대출 규제, 은행 리스크 차원서 자율 관리해야”
이복현 금감원장은 10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 회관에서 은행장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가계대출 기준 조정안을 18개 은행의 은행장과 논의했다.
이복현 원장은 정부의 가계대출 관리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감독 당국의 가계대출 규제는 기본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며 “은행이 각자의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가계대출 규제에 시장에 혼란을 가져온 데 대해선 거듭 사과했다. 그는 “대출 정책 운영 때문에 국민, 소비자, 은행에서 업무 담당자께 송구하다”고 했다. 이 원장은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후에도 “다시 한 번 송구하다”며 정책적인 실책을 거듭 사과했다.
이 원장이 추가적인 메시지를 자제하고 한발 물러난 모습의 배경엔 그간 전방위적인 대출 규제 압박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서다. 가계대출 증가세는 이달 들어 한풀 꺾였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지난 9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22조 2313억원으로 8월말 대비 1조 8671억원 늘어났다. 하루 평균(영업일 기준) 약 3112억원씩 증가한 것인데 지난달 하루 평균 증가폭이 약 4584억원인 점을 고려하면 증가 속도가 둔화했다. 이 중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570조 1170억원으로 전달 말 대비 1조 4554억원 늘어났다. 하루 평균 약 2426억원 규모로 8월 하루 평균 약 4244억원과 비하면 증가 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든 모습이다.
◇은행 대출규제, 실수요자 예외기준 확산
은행권은 이날 금감원장과의 간담회 이후 실수요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출 규제 예외조항을 곧 내놓을 예정이다. 가장 발 빠른 조처를 한 곳은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다. 신한은행은 이날부터 주택 신규 구입 목적의 주담대를 무주택 세대에만 허용하기로 했다. 투기 수요를 없애기 위해 다주택자와 1주택자 대출은 막으면서 대출 규제를 유지하되 실수요자에 대한 규제는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1주택자의 ‘주택 처분 조건부’ 주담대는 취급하지 않는다. 대신 일시적 2주택자나 실거주 목적의 신규 주택 구입 목적으로 주담대 실행 ‘당일’에 기존 보유 주택을 매도하는 조건이라면 대출해주기로 했다.
신용대출도 원칙적으로 최대 연소득까지만 내주지만 본인 결혼이나 직계가족 사망, 자녀 출산 등 불가피한 상황의 차주에 대해선 연소득의 150%(최대 1억원)까지 대출해주기로 했다. 지난 3일부터 시행한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담대 한도 1억원’ 규제에도 임차보증금 반환목적의 생활안정자금 주담대에 대해선 1억원을 초과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앞서 우리은행도 지난 8일 결혼, 직장·학교 수도권 이전 등의 가계대출 취급 제한 예외 조건을 뒀다. 국민은행은 9일부터 1주택 세대의 수도권 주택 추가 구입 목적의 대출 취급을 중단하되 이사를 앞둔 실수요자에 대해선 기존 보유 주택을 처분하는 조건으로 주담대를 내주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날 간담회 결과를 두고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자율 운영’으로 은행에 결국 책임을 떠넘긴 대출 관리와 ‘좌고우면’하는 당국의 모호한 태도가 과연 실수요자 보호와 대출 규제의 효과를 모두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당장 가계대출 증가세를 둔화할 수 있겠으나 일시적 대안에 그치겠다고 입을 모았다. 아울러 실수요와 가수요를 구분할 정책적인 가이드라인도 없다고 했다. 실수요와 투기수요를 명확히 구분하기 어려운 만큼 은행에 심사를 맡겨 구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심사기준도 은행별로 다를 수밖에 없어 실수요자의 또 다른 피해가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를 비롯해 은행권이 공급 규제를 전방위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계대출 증가세는 서서히 줄어들 순 있겠으나 제각각 다른 은행 기준은 차주의 혼선을 더 키울 수 있다”며 “오히려 시장에 명확한 시그널을 주고 혼선을 막기 위해선 정부 주도하의 실수요자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출 정책이 실수요자냐 투기수요냐를 가르는 데 초점을 맞추면 시장 혼란은 더 커지면서 쉽게 잡히기 어렵다”며 “자신의 상환 범위 내에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을 확실히 세울 수 있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하는 게 맞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