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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19단독 이성은 판사는 28일 위증 혐의로 기소된 전 보안사 대공처 대공수사관 고병천(78)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고씨가 재심 재판에 출석해 중대한 인권침해행위를 은폐하려 했다”며 “이런 행위는 피해자들에게 고문·가혹행위를 할 때와 다를 바 없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또 “고씨가 여타 수사관들처럼 소환에 불응하거나 증언거부권을 행사하는 식으로 곤란한 상황을 모면하지 않고 굳이 법정에 출석해 실체적 진실 발견을 방해했다”며 “국가의 사법기능을 침해해 피해자들을 간첩으로 만들었던 당시 수사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수사관들의 입장을 적극 관철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고씨에게 양형기준(징역 1월~10월) 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한 이유에 대해선 “고씨의 자백이 피해자 입장이나 국가의 사법질서 유지를 고려하거나, 진지하게 반성하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의심이 들어 선처 이유로 삼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고문 배경에 대해 고씨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했고 개인의 영달이나 사리사욕이 없었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며 “고씨는 당시 수사2계에서 두 번째로 계급이 높아 재일동포 간첩수사를 주도한 점을 인정받아 포상까지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문과 가혹행위를 관행으로 규정함으로써 본인에게 그다지 책임이 없다거나 지금에 와서 달리 평가하는 건 부당하다는 식으로 잘못을 은연중에 표출하며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연 고씨 가족에게도 고문이 가해졌을 경우에도 지금 입장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훈계했다.
◇피해자 대리인 “檢, 형량 높은 모해위증 기소 끝내 거부”
고문 피해자 윤정헌씨는 판결 선고 후 “(고문) 트라우마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 법정에서 고씨와 같은 공간에 있으며 갑자기 눈물이 터지는 걸 보고 마음속 깊이 큰 상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판사님께서 최대한으로 우리 입장을 이해하고 판결을 해주신 것 같다. 참 좋은 판사님을 만났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다른 피해자인 이종수씨는 “고씨는 보안사 수사관 중에서도 아주 악질이었다”며 “결국 자신이 잔머리를 쓰다가 자기 잔머리에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피해자 대리인인 장경욱 변호사는 “훌륭한 판사님에 대해 수고 많으셨고 존경하는 마음을 표하고 싶다”며 “고문 피해자분들과 그 가족들이 고씨의 실형 판결을 보면서 마음의 상처들이 조금씩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된 것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장 변호사는 “고문 피해자들이 재심을 거치며 상처가 치유되기보단 2·3차 피해를 입으셨다. 오늘 이 판결을 계기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능욕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며 “과거를 합리화하기 바쁜 가해자들이 존재한다면 이 판결을 계기로 참회하고 피해자 앞에서 사과하고 스스로 참회해 인생을 마감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거사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태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장 변호사는 “검찰은 공소시효 만료 이틀 전에야 고씨를 기소했다. 형량이 더욱 센 모해위증죄로 기소했다면 모해가 입증돼 더 강한 처벌이 됐을 것”이라며 “제가 공소장 변경을 검찰에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처음엔 소극적이었다가 고씨의 법정구속 이후에 사회적으로 관심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본연의 역할을 했다”며 “시대의 소명을 자각하지 못하고 변화에 떠밀리지 말고 앞으로는 능동적으로 역사의 정의를 실현하는 소임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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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보안사 수사과는 공작과가 검거한 인물에 대한 수사 및 검찰 송치 업무만 담당했다. 하지만 공적이 주로 공작과에 돌아가자 수사과도 적극적으로 검거에 들어갔다. 고씨가 소속된 학원반은 재일교포 유학생들을 집중 타깃으로 삼았다. 이들이 일본 태생으로 비교적 자유로운 사상을 지녔고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을 이용한 조작이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이씨와 윤씨는 각각 1982년과 1984년 보안사로 끌려서 수십여일 간 불법구금 상태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고 간첩으로 조작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각각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각각 징역 10년과 7년을 선고받았다.
◇보안사 학원반 소속으로 재일동포 타깃…고병천, ‘고문 장인’ 불려
공소시효 만료로 고문에 대한 법의 처벌을 피한 가운데 고씨는 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보안사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에 대해 조사에서 고문 사실을 부인했다. 다른 고문 수사관들이 조사에 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한 것에 비해 고씨는 조사에 직접 참여하며 적극적으로 고문과 가혹행위가 없었다고 항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화해위원회는 2008~2009년 윤씨와 이씨 사건의 재심을 권고했다. 고씨는 재심이 개시되자 이번엔 법정까지 직접 출석해 거짓 증언을 했다. 그는 2010년 12월16일 재심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해 “윤씨와 이씨에 대한 고문이나 가혹행위를 한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진술을 반복했다. 이씨와 윤씨는 모두 재심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검찰의 윤씨의 고소로 수사를 시작했지만 수사에 미적대다 공소시효 만료 이틀 전인 지난해 12월13일에야 고씨를 위증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고씨의 태도는 애초 법정에서도 고문 사실을 강하게 부인했다. 피해자 측과 재판부의 압박 속에서 그는 돌연 2회 공판에서부터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고씨의 사과 의사를 확인한 피해자들이 지난달 2일 공판을 보기 위해 일본에서 입국까지 했지만 그는 피해자 측 대리인의 질문에 대해 “그 사람은 내가 안 했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식의 답변으로 일관했다.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피해자 윤씨는 당시 “고씨 변호인이 다음 재판에 사과한다고 해서 그걸 기대하고 오늘 새벽에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다”며 “하지만 이건 사과가 아니다. 그냥 재판을 빨리 끝내고 집행유예를 받고 싶은 속마음이 훤히 보인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러나 고씨는 피해자들의 울분과 재판부의 설득에도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기억을 해내서 피해자들이 아픈 과거를 떠나보낼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열쇠는 고씨가 쥐고 있다”며 “아직 피해자들이 원하는 만큼의 사죄가 이뤄지려면 고씨에게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며 직권으로 고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해 이를 집행하도록 했다.
고씨는 지난달 30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신문을 통해 처음으로 구체적인 고문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최후진술을 통해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대단히 죄송하고 진심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럽다”며 피해자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고문을 하게 된 것에 대해선 “관행이었다”는 말로 죄를 회피했다. 검찰은 당시 고씨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한편 보안사 고문수사관에 대한 실형 선고는 추재엽 전 서울양천구청장에 이은 두 번째이다. 추씨는 보안사의 간첩조작을 폭로한 ‘보안사’의 저자인 김병진씨가 자신의 고문 사실을 폭로하자 이를 부인하는 문자메시지를 살포했다. 김씨의 고소로 검찰은 수사를 시작해 추씨를 공직선거법·무고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추씨는 2013년 4월 대법원에서 징역 1년3월의 확정판결을 받고 구청장직을 상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