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구급차를 타고서라도'…피붙이 향한 절절함 가득했다

강신우 기자I 2015.10.20 16:34:50
[금강산=공동취재단·이데일리 장영은 최선 기자] 연년생 오빠를 만나기 위해 염진례(83) 할머니는 20일 북으로 가는 구급차에 올랐다. 극심한 허리 디스크 증세를 참으며 염진례 할머니는 구급차에 몸을 뉘인 채 군사분계선(MDL)을 넘었다. 고령과 건강 악화를 이유로 다른 이 4명은 상봉을 포기하기도 했다. 390명의 남측 방북단과 함께 버스를 타진 못했지만, 오빠 염진봉(84) 할아버지를 만나야 한다는 그의 의지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염진례 할머니는 전날 남측 이산가족 집결지인 강원도 속초 한화리조트에 휠체어를 탄 채 나타났다. 그의 입에는 손수건이 물려 있었다. 오빠를 만날 생각에 떨리는 턱을 주체할 수 없었다. 급기야 염진례 할머니는 손수건을 입에 물어 진정하려 애썼다고 한다. 60년이 넘도록 생사를 확인하지 못했던 오빠의 생존 소식이 들려온 때문이다. 오빠를 생각하며 적어내린 편지와 그간 찍은 사진도 선물로 준비했다.

큰오빠를 만나기 위해 북측으로 떠난 김순탁(77) 할머니도 이날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그의 천식 증세가 악화해 산소마스크를 써야했다. 그의 오빠 김형환(83) 할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북측에 끌려가 소식이 끊겼다. 가족들은 김형환 할아버지의 이름을 어머니 묘비에 새기기까지 했다. 큰오빠가 살아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산 상봉을 신청해 이날 북측으로 떠난 가족들은 대부분이 80세 이상의 고령자였다. 때문에 방북단을 구성하기 전부터 상봉을 포기해야 했던 이들도,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가족을 찾아 나선 이들도 있었다. 임찬수(88) 할아버지는 동생 림달수(81)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휠체어에 탄 채 방북했다. 전날 준비한 선물을 포장할 때는 직접 일어나 동생들에게 챙길 물건을 일러주기도 했다. 임찬수 할아버지처럼 거동이 불편한 가족을 위해 한국적십자는 34대의 휠체어를 준비해 금강산까지 방북단을 지원했다.

김남규 할아버지는 96세의 몸을 이끌고 여동생을 만나기 위해 방북길에 올랐다. 그의 사위인 강희욱(65) 씨는 “장인 어른이 하루 세 번 운동을 나가신다. 여동생을 만나시려고 여지껏 건강 관리를 해오신 것 같다”고 전했다.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우리 측 가족 대부분은 ‘건강’을 화두로 삼았다. 오빠 리병룡(84)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이차숙(81) 할머니는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무엇이 제일 궁금한 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건강. 만나면 제일 먼저 건강한 지 묻고 싶다”며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중학교 진학을 위해 북으로 간 뒤 다시 만나지 못한 동생 림옥례(82) 할머니를 기다리던 임옥남(84) 할머니는 “그동안 못 다한 정을 나누며 남은 여생,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라고 해야지”라고 말했다.

이날 상봉은 오후 3시 30분에 이뤄졌다. 전날 오후 2시 우리 측 가족들이 속초 한화리조트에 모이기 시작한 지 25시간 30분 만이다. “피붙이인지라 작은 아버지가 보고싶었다. 돌아가신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북에 살아계셨고 우리를 찾았다고 하니 며칠 동안 잠도 못잤다”고 말한 양옥녀(67) 씨처럼 수일 전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을 가족들에게는 더욱 길게 느껴질 시간이다.

특히 북한이 지난 70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우리 시간보다 30분 빠른 평양시를 적용해 상봉 시간 역시 남북간 30분 차이를 보였다. 이산가족 단체 상봉 공식시간은 오후 3시(평양시간)였지만, 실제 상봉은 3시 30분에야 이뤄졌다. 이산가족 상봉이 북측에서 이뤄지는 만큼 공식시간은 평양시를 적용한 때문이다.

60여 년간 서로 떨어져 지내던 가족이 만나는 화해 분위기 속에서도 남북 간 긴장은 여전, 대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상봉에 앞서 북측 남북출입국사무소(CIQ)에 도착한 우리 측 취재진 29명은 북측으로부터 노트북 전수조사를 받아야 했다. 일부 취재진의 항의에 북측 세관 직원은 “법과 원칙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잘라 말하기도 했다. 북측은 일반 상봉가족이 들고 간 노트북과 태블릿PC도 검색했다. 상봉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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