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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재판장 김상동)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구 전 청장에 대해 “구 전 청장의 자리와 화면 거리, 화면 크기 등 상황지휘센터 구조와 무전 내용을 고려하면 구 전 청장이 당시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현장 책임자였던 신용균 전 서울청 4기동단장(총경, 현 교통관리과장)과 살수 요원이었던 한석진·최윤석 경장에 대해선 업무상과실치사가 인정됐다. 신 총경과 최 경장에겐 각각 벌금 1000만원과 700만원이 선고됐다. 업무상과실치사 외에도 살수차 관리 일지를 조작한 혐의를 추가로 받는 한 경장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유죄 인정 경찰들도 국가배상·신분영향 등 이유 실형 피해
재판부는 이들에 대한 양형 이유에 대해 “피해자는 생명을 보호받아야 할 공권력으로부터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며 “국민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힌 공권력에 대한 경고,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위로를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피고인들은 시위 현장에 직접 투입돼 보급된 장비로 명령에 따라 시위를 직접 방어하던 경찰관들일 뿐”이라며 “그 상황에서 꼭 그렇게까지 살수를 할 필요가 있었는지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었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들의 과실 정도, 피해자의 행위가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친 점, 유족이 곡절 끝에 늦게나마 민사소송절차를 통해 국가로부터 4억9000만원 정도를 배상받은 점과 함께 경찰관인 피고인들에 대한 형벌이 신분에 미치게 되는 영향 등도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한·최 경장에 대해 “당시 시위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어려울 정도로 긴박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려웠다”며 “백씨 상반신 뒷부분에 직사로 물줄기를 맞혀 아스팔트 바닥에 부딪혀 의식을 잃은 이후에도 17초간 백씨와 구조대를 향해 직수 살수를 이어갔다”고 판단했다.
신 총경에 대해서도 “백씨에 대한 살수 과정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살수차를 운용하며 시위대 보호 임무가 더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살수차를 감시할 병력을 배치하지 않는 등 주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백선하 진단서’·‘빨간우의 가격설’ 모두 일축
재판부는 아울러 백씨의 사망원인이 살수차에 의한 두부손상이라고 판단했다. 백씨 사망원인은 진단서에 ‘병사’로 기재했던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의 진술에 대해선 대한의사협회와 서울대병원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등 다른 의료인들의 판단을 근거로 “신빙성이 높지 않다”고 일축했다.
또 살수차 요원 등이 주장한 당시 현장에 있던 빨간색 우의를 입은 시위대의 백씨 타격 가능성에 대해선 “법의학자들은 백씨가 다른 충격에 의해 두부 손상이 발생했다고 판단했다”며 “빨간색 우의 착용자가 백씨 위로 넘어지는 과정에서 강한 충격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빨간색 우의 착용자가 넘어지게 된 직접적 영향도 살수차의 살수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총경의 정당방위 주장에 대해서도 “피해자는 경찰관들의 규정 위반으로 생명을 잃었다”며 “경찰관들의 행위가 정당방위로 볼 수 없어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아울러 한 경장이 살수차 관련해 허위공문서를 작성하고 이를 행사한 혐의에 대해서도 유죄로 인정했다.
백씨는 2015년 11월14일 열린 민중총궐기에 참석해 세종대로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중 충남경찰청 소속 한·최 경장이 몰던 살수차가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져 중태에 빠졌다. 그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긴급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생명연명장치에 의지하다 2016년 9월25일 사망했다. 검찰은 정권교체 후인 지난해 10월에야 구 전 청장 등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민변 “공권력 남용으로 국민 목숨 앗아갔는데 고작 벌금형?”
백씨 유족과 대리인은 판결 선고 후 충격을 받은 듯 “나중에 의견을 밝히겠다”고 말한 후 법원 청사를 빠져나갔다. 무죄를 선고받은 구 전 청장은 소회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답변을 거부했다.
검찰은 구 전 청장에 대한 무죄 판결에 대해 “시위현장에 없었기때문에 현장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유로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형식논리에 치우쳤다”며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발했다.
구체적으로 “상황지휘센터 내 구 전 청장 자리에서도 충분히 모니터를 통해 시위 현장을 파악할 수 있었다”며 “사건 당일 상황지휘센터에서 시위 현장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며 신 총경에게 무전기로 ‘쏴’, ‘쏴’ 하면서 백남기 농민 등 시위대를 향한 살수를 적극 독려했다”고 반박했다.
이어 “당시 사고의 위험성이 고조되고 있었으나 구 전 청장은 현장 지휘관에게 안전 관련 주의사항을 촉구하지 않고 오히려 무전으로 시위대를 향해 ‘파바 농도를 높여 살수하라’고 수차례 걸쳐 직접 지시했다”고 밝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구 전 청장에 대한 무죄 선고를 납득하기 어렵다”며 “가장 큰 지휘책임을 부담해야 할 구 전 청장에게만 무죄를 선고한 판단은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기존 판결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다른 경찰관들에 대한 낮은 형량에 대해서도 “공권력 남용으로 국민 목숨을 앗아간 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고작 벌금형에 그친다면 무엇으로 공권력 남용에 대한 경고하고 방지하겠다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